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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우먼K Dec 20. 2021

쌍둥이의 출산으로 어른이 되어가다.

갑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다.


내가 쌍둥이 엄마라고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로 고군분투하며 힘겨워할 때 만난 남편과 순식간에 결혼이란 걸 해버렸다. 뭐가 좋다고 26살 이란 나이에 덜컹 남의 편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하하.

남의 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아기집을 보러 간 날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 아기집 아주 잘 자리 잡았고요! 제가 재미난 걸 좀 보여드릴까요?"

"재밌는 거요?" 

" 여기 아기집이 하나 더 보이네요. 약간 찌그러져있죠? 아마 도태될 가능성이 클 거 같은데 그래도 마음 편안하게 갖고 심장소리 들을 때까지 안정을 한번 취해보세요. "

긴긴 4주를 보내고 바쁜 신랑을 놔두고 친한 언니와 산부인과를 찾았다. 정말 다행히 찌그러져있었던 아기집에서 자기 여기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듯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니와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의사 선생님이 서로를 찢어놓으려 애쓰던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창피한지. 그래도 생명의 끈질김에 감동한 우리를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심장소리의 감동도 잠시일 뿐 상상초월의 입덧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TV에서만 보던 입덧은 음식을 보고 구역질하는 모습뿐이었는데 나의 입덧은 바다 위  작은 배 위에서 큰 파도 계속 느끼고 있는 이상하고 굉장한 울렁거림이었다. 쌍둥이가 2배로 심한 입덧으로  새콤달콤, 마이쮸 등 시중에 나와있는 캐러멜은 다 먹어본 듯하다. 힘든 입덧을 이겨내며 아이들을 키웠지만 잦은 조기수축으로 인해 5개월 동안 10번의 입원을 하고 마지막 2달은 병원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빛도 볼 수 없는 방 안에서 아이가 커야 한다는 이유로 매일 지켜운 미역국을 먹고 2달을 버텼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넘어가려던 중 쌍둥이들도 더 이상 나의 우울함을 못 참겠는지 35주 5일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육아는 나에게는 인생 최고의 도전이다.


아이를 낳아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조리원이 천국이라는 걸. 하지만 나의 쌍둥이 육아는 조리원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보기 위해 수유실로 향하면 나의 스트레스는 시작이었다. 아이가 작다는 이유로 수유실 안에 있는 모든 출산한 엄마들의 관심을 받았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2킬로도 안 돼서 나온 쌍둥이들은 남들의 눈에는 너무 작아 짠해 보이기까지 했다. 힘든 입원생활로 그래도 좀 키워서 나왔지만 다른 아기들에 비해 유독 작은 아이들 때문에 꼭 초유라도 먹여야겠다는 의지로 수유실에 몇 시간째 앉아있었다. 아이의 입도 작고 나의 젖 모양도 좋지 않아 수유 후에는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아이들과 나는 매일 수유시간이 힘든 시간이었다. 온몸을 누가 방망이로 계속 때린듯한 젖몸살을 앓고 설소대가 짧아 잘 못 먹는 50일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설소대 절제도 하러 가보고 6개월은 혼합수유를 하겠다는 나름 용감한 의지로 젖이 잘 나오게 한다는 오케타니 마사지도 받아 가면 육아를 시작했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한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을 불사 지르며 육아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의 육아는 젖만 안 물렸지 그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매 순간이 육아는 인생 최고의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을 통해 공감에 눈을 뜨다.


우리 아이들은 이란성쌍둥이다.  일란성쌍둥이는 한 개의 난자와 한 개의 정자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수정란이 두 개로 쪼개져 나오기 때문에 닮았지만 이란성쌍둥이는 두 개의 난자와 두 개의 정자가 수정해서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닮지 않았다. 좁은 배 안에서 각각의 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아이들이다. 태어나서 보니 머리숱부터 얼굴 형태, 몸무게 등 닮은 구석이 없었다. 정말 완전히 다른 아기가 그냥 한날에 같이 나온 것뿐이었다. 쌍둥이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면 두 명의 아이가 한꺼번에 울 때다. 엄마 품은 하난데 아이는 둘이다 보니 잘 안아줄 수 없었다.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은 두 아이 울음의 이유가 다를 때이다.

대체 왜 우는지. 왜 저렇게 짜증을 내는지. 왜 잠을 안 자는지... 계속되는 울음을 멈추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우는 이유들을 알아내야 했고 각자 다르게 표현하는 아이들을 찬찬히 계속해서 보고 알아채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이에게 공감해야 하고 아이가 말하는 감정의 표현을 빨리 알아차려 행동해야지만 내가 살 수 있었다. 그것이 공감 불능 엄마에게  시작된 작은 공감의 씨앗이었다.




감정을 알게 되고 공감으로 성장하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감정코칭


나에게 쌍둥이 육아는 나를 더 성장할 수 있는 시작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간 것 같다. 누군가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내가 우선인 세상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내가 먼저였고 양보 따위 나에겐 없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감정 표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고 상처를 입은 적도 많다. 화가 나도 슬퍼도 기분이 좋아도 행복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감정 표현은 눈물밖에 없었던 것 같다.

혼자일 때는 불완전한 감정 표현으로도 살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나의 부족한 감정 표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는 감정적 교류가 필요했다.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성향이 다른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고 아이들의 성향에 맞는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다 알고 있다는 육아서 바이블 감정코칭을 읽고 깨달았다. 

누군가의 감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들이 표현하는 것들을 알아차려야만 제대로 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쌍둥이를 만나기 전 난 불완전한 어른이었고 완성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감정의 중요함과 공감에 대한 중요함을 배워가며 성장하고 있다. 공감의 시작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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