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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Oct 20. 2020

8. '구나 치료'가 필요한 아빠 이야기

심리상담을 받고..

최근 심리 상담을 받았다. 가족 상담 전문 기관과 아동 청소년 발달 심리센터에서다. 상담은 서울시 아빠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무료다. 나는 양육태도를 점검하기 위해 신청했다. '서울시 아빠단'은 아빠를 대상으로 강의와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취지로 2020년 4월 첫 회를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대부분의 행사는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상담 과정은 내담이라는 특성으로 마지막이었다. 주최 측이 상담 전에 3가지  심리검사를 했다. MBT(주 1), 검사는 아빠와 아이, K-PRQ(주 2)와 PAT(주 3)는 아빠만 실시했다.


검사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MBTI 검사에서 나는 세상의 소금형(ISTJ), 아이는 열정적인 중재자(INFP)였다. 나의 특이점은 사고(T)와 감정(F)에서 사고가 만점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분명한 성향을 수치로 나타내는 지표는 없었으나 인식(P)은 높았다. K-PRQ 검사에서 가장 높은 항목은 '관계 좌절감'으로 57점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니, 나는 아이에게 항상 무언가를 하자고 이야기하고 실망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지막 PAT는 지나침이 5개, 미흡함이 2개, 이상적임이 1개였다. 지나침 지표 5개를 풀어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아이에게 간섭, 처벌, 감독, 과잉 기대가 과도하고 비일 관성까지 고루 갖춘 아빠였다. 심리검사 결과를 100% 신뢰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PAT 검사 결과


상담은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으로 시작했다. 결과지는 내가 의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강요와 억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상담사가 잘잘못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물었다면 오히려 편했을지 모르겠다. 수치와 건조한 해설은 긴 바늘로 폐부를 깊숙이 찔리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나의 잘못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변명했다. 내가 했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심리상담사가 묻는 질문은 '나의 감정'이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사실 내 행동의 당위성을 확인하려 상담을 신청했다. 아이와 함께한 놀이에 대한 자부심, 꾸준히 책을 읽어준 것에 대한 뿌듯함, 여행을 다닌 횟수 같은 것 말이다. 성과와 수치에 집착을 했다. 그런데 집착한 것들에 뒤통수를 쌔게 맞은 느낌이었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새운 틀 속에 아이를 가둬두고 있다고 해석 가능했다. 과연 아이가 원한 것을 한 걸까. 그저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허울로 당근을 주고 채찍을 휘두른 건 아닐까.



나와 다르면 무시하고 비난한다. 의견이 다른 상황도 참지 못한다. 내가 옳다고, 내 주장이 진실인 양, 삶에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오만하다. 종종 답답함을 참지 못해 성질을 부린다. 마치 손에 불덩이를 올려놓고 델까 호들갑을 떨다 던져버리는 모습이다. 감정이 스프링처럼 억눌려있다 튀어나간다. 폭발해도 그때뿐이다. 내 감정의 파편이 아이에게 생채기를 낸 것 아닐까. 아이는 물건을 떨어뜨리고 내 눈치를 봤다. 혼을 내면 영혼이 빠진듯한 표정을 짓는다.


감정은 내게 위험이다. 위험은 관리해야 한다. 일반적인 위험 관리 방법은 4가지다. 회피는 삼십육계 줄행랑이고, 완화는 예방접종이다. 전가는 타인에게 넘겨버리는 것이고, 수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각각을 분리하면 회피와 수용은 적극적, 전가와 완화는 소극적 대처하는 방법이다. 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두 가지를 섞어서 해결한다. 위험을 수용하고 분석해서 대안을 만들고 완화 대책을 궁리한다. 같은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면서 말썽을 일으킨다. 마음을 직면해야 알 수 있는데, 그 조차도 두려워 뒷걸음만 치고 있다. 감정은 가슴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감정을 글자처럼 읽는다. 타인과 대화할 때도 논리적으로 현상을 파악할 뿐, 감정은 최대한 감추려 한다. 내 안의 감정을 쳐다보기 두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던데, 마음의 내면을 들춰야 모습을 드러내는 행복은 내 안에 었다.



본질을 외면하고 회피를 선택했다. 자신 있는 척했지만 내면은 한없이 움츠려 들었다.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산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목적은 까마득히 잊고, 달리고만 있는 건 아닌지. 합리화를 위해 현실에 충실하자고 뇌까렸는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꺼내볼 용기가, 내 삶이 부정당하는 걸 볼 수 없어, 달리고만 있는 건 아닌지. 멈출 수 없어 달리는 기차 같다. 달리는 이유는 탈선이 두려워서다. 한눈을 팔면 바퀴는 뒤틀리고 선로에서 이탈한다. 아련하고 애달픈 감정이 꿈틀대지만 가을이라고 계절 탓하며 애써 덮어둔다.


상담을 하면서 불편한 정서가 계속 밀고 들어왔다. 면담을 하면서 나는 잘난 체했다. '그건 책에서 봤어요. 아는 이야기예요.'라며. 하지만 상담사는 끝까지 상황마다 감정을 물었다. 그것이 너무 힘겨웠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즉흥보다는 계획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쓸모없는 액세서리를 달고 다는 것 같다.


35년 심리 상담 전문가는 내담자의 대부분은 두 마디면 치유 가능하다고 주장다. 아이들은 '구나 치료', 엄마들은 '오죽하면 치료'라고 제시다. '구나 치료'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방법이고. "그랬구나~"라고 하면 감정이 누그러지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의 감정을 되돌아보고 해결책도 혼자 찾아나간고 다. '오죽하면 치료'는 억울한 감정을 읽어주는 방식이고. "오죽하면 그러셨어요~"라고 하면 억울한 감정이 풀린다고 한다. 나 역시도 억울할 때 화가 많이 발생다. 구나 치료에 세부적으로 '나 전달법'으로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보통 '너'로 시작하면 비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한 내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행동에 대한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는 방법이다. 중요한 부분은 내 감정을 말하기 전에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읽는 것이라고 다.

두 가지 방법의 공통점은 공감이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동조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상담사에게 아이의 굳어진 얼굴을 보면서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상담사는 방법을 알려줬다. 물건을 떨어트려서 눈치 보는 아이에게 '아빠가 혼낼까 봐 걱정됐구나, 혼 안 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어쩌면 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 말이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지도 모른다. 듣지 못한 말. 받지 못했기에 주지 못한 말일 수도 있다.


상담을 끝내고 상념에 빠졌다. 아마도 갑자기 들여다본 감정에 놀라서인 것 같다. 변화의 근원은 내 안의 나를 대면하는 것이다. 그 용기는 이기적이기보다 이타적이다. 나에게만 집중하면 변화하기 쉽지 않다. 모든 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철없는 나를 되돌아보며, 부모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갑자기 모든 걸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한 걸음, 아니 반보라도 용기를 내본다. 그게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하며.




주 1: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MBTI는 시행이 쉽고 간편하여 학교, 직장, 군대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MBTI는 다음과 같은 4가지 분류 기준에 따른 결과에 의해 수검자를 16가지 심리 유형 중에 하나로 분류한다. 정신적 에너지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외향-내향(E-I) 지표, 정보 수집을 포함한 인식의 기능을 나타내는 감각-직관(S-N) 지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사고-감정(T-F) 지표, 인식 기능과 판단 기능이 실생활에서 적용되어 나타난 생활양식을 보여 주는 판단-인식(J-P) 지표이다. MBTI는 이 4가지 선호 지표가 조합된 양식을 통해 16가지 성격 유형을 설명하여, 성격적 특성과 행동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 (심리학 용어 사전, 2014. 4.)


주 2: K-PRQ(KOREA-Parent Relationship Questionnaire-Child and Adolescent)

아동·청소년용 부모 자녀 관계 검사는 부모 자녀 관계에 대한 부모 혹은 주 양육자의 관점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본 검사는 전통적 부모 자녀 관계 차원인 애착, 의사소통, 훈육, 관여, 양육 효능감, 학교 만족도, 관계 좌절감을 측정한다. 본 검사 결과는 부모 자녀 관계 특성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임상, 소아과, 상담, 학교, 아동 양육 관련 법정 심리 및 유사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아동·청소년용 부모 자녀 관계 검사는 아동·청소년기의 부모 자녀 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측정하는 하위 척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부모 자녀 관계의 여러 특성을 파악하여 이에 따라서 적합한 중재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상담 및 임상 장면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검사 결과지 참조]


주 3: PAT(Parent Attitude Test)

임호찬(나사렛대 교수)이 개발 한 검사이다. 총 8가지 영역 43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힘은 부모와 교육자에게 있습니다. 부모는 감정적인 측면을 발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교육자는 인지적인 측면을 발달시키는 데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동 각자의 능력을 최대로 발현시키려면 EQ(정서 지수(Emotional Quotient)와 IQ(지능지수; Intelligence Quotient)가 균형적으로 발달하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동이 장차 자신이 맡는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직업적 성공과의 연관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IQ=EQ, 즉 EQ의 발달이 IQ의 발달과 균형을 이룰 때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에게 든든한 정서적 안정성을 만들어 주는 것은 곧 부모입니다. 때문에 특히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인 양육태도(Parenting Attitude)는 EQ와 IQ의 균형적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자녀의 미래를 열어주는 핵심 열쇠인 이상적인 양육태도는 오직 부모님의 마음 다스림과 양육 과정에서의 적절한 격려, 적당한 압력, 그리고 알맞은 처벌에 의하여 달성될 수 있습니다. 본 검사를 자가 진단의 도구로서 일정 기간마다(약 6개월) 실시해 보시면서 보다 바람직한 양육태도를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검사 결과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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