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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Dec 12. 2020

16. 기록을 기억하다

기록을 통한 나의 변화

2020년도 이제 보름 정도 남았다. 올해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장 큰 변화는 코로나 19로 인한 대외활동 감소였다. 현재 확진자는 천명을 육박해 외부활동은 더 위축될 것 같다. 이번 연말은 예년보다 차분히 갈무리되지 않을까 한다. 범위를 좁혀 개인적으로는 영상 의존도가 증가한 1년이었다. 대면활동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바뀌었는데. 아이는 등교 대신 클래스팅이나 EBS 수업을 들었고, 나는 체육관 폐쇄로 홈트(홈트레이닝)로 운동을 했다. 또한 세미나, 독서모임, 영상회의 등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나는 온라인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준비 과정의 번거로움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일 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더욱이 집중력도 떨어진다. 핸드폰도 될 수 있으면 멀리하려 노력한다. 부엉이처럼 큰 눈으로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기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이유로는 아이의 미디어 접촉을 줄이려는 욕심도 있다. 가족 모두가 TV 앞에서 대화 없이 멍하니 화면을 뚫어져라 보는 모습은 만화영화 심슨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티브이 두대 중 거실에 있는 티브이는 아이가 3살이 되고 친구에게 무상 기증했다. 마침 집에 있던 또 다른 하나는 아이가 다리를 부러트렸는데 고장이 났다. 아이에게는 '아빠는 가난하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 다녔다. 그런 나의 시도는 올해 물거품이 됐다.



동영상 시청 역시 마뜩잖게 생각했다. 정보의 전달이라는 순기능보다는 단방향 메시지 전달이 싫었다. 의견을 나눌 수도,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느낌은 거부감을 들게 만들었다. 서로 이야기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무전기 같은 방식이면 좋겠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처음엔 변화된 상황을 거부했다. 비상시국에도 적응보단 고집을 부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된다'며 내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고립됐다.


그때도 계속 유지한 것은 독서였지만, 비판적 사고로 독서를 한다 해도 의사소통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 당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봤는데 이해는 안 되고 욕심만 앞서 답답했다. 그래서 어려운 부분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봤다. 처음엔 물리였다. 어려운 과학 용어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콘텐츠가 많았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업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인강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 동영상을 찾은 건 처음이었다. 몇 개의 동영상을 보고 마치 내가 원시인 같다고 느꼈다. 어려운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같은 내용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를 찾은 것 같았다. 편리한 도구를 내 아집으로 모른척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변한 환경에 천천히 적응해갔다.


바뀐 부분 한 가지를 더 꼽자면 기록하는 습관이다. 책을 몇 권 읽지는 않았지만, 작년까지 독서를 하면 뿌듯함만 남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내용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저 '나 책 읽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젠체했다. 그런데 막상 책 설명을 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고 머쓱해져 머리만 긁적였다. 갑한 마음에 좋은 문장을 발췌하고 생각을 덧붙다. 그러자 상념은 책과 함께 머물렀다. 책 제목을 보면 그때의 상황과 단상이 떠올랐다. 기억의 잔상을 조금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7월부터 10월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수강했다. 단상들은 모아도 글이 되지 않아 아쉬운 참이었는데, 마침 '나의 첫 번째 에세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4개월간 총 20번 수업으로 6개의 글을 썼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전에는 퇴고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나의 주제를 글에 담으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다. 틀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기본 찬으로 깔고, 중언부언으로 양념을 더해 간은 강했으며, 동어 반복으로 같은 음식을 계속 먹는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소화 안 되는 더부룩한 밥상이었다. 항상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의 마음이었지만, 그런 글을 강사님들은 열정으로 첨삭해주었다. 타인에게 비친 내 문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미약하고 부족한 날것 자체이지만 퇴고가 무엇인지는 알았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문집 출간이었다. 글 중간에 삽화를 넣기도 하고 디자인을 해서 4개월간의 노력을 한 권으로 묶어냈다. 글쓴이에 내 이름을 본 순간은 '짜릿함', 그 이상이었다. 창작의 기쁨이랄까, 쏟아부은 시간만큼의 희열이 느껴졌다. 내가 쓴 기록이 활자로 인쇄되어 손 끝에 전해지는 촉감은 낯선 포근함이었다. 함께한 문우들의 글도 꼼꼼히 읽었다. 그 속에는 각자의 인생이 담겨있고 삶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각자의 글에 담긴 향기는 과거와 미래로 나를 이끌었다.


올 한 해 나의 변화는 기록과 맞닿아 있다. 문자의 기록을 책으로 읽고, 영상으로 남겨진 기록을 보며, 내 기록을 문집으로 남겼다. 타인과 나의 기록은 나의 행동과 생각을 변화시켰다. 어쩌면 난 바뀌려는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유연한 사고를 하기 위해 기록은 좋은 수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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