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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직딩 Jun 30. 2023

테오도르, 차라리 고양이를 키우지 그랬어요

영화 그녀(HER) 감상평

영화 그녀(HER)를 본지는 꽤 오래됐고, 언젠가 감상평을 써야지 라고 마음만 먹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이제야 쓰게 된다. 영화의 배경인 2025년이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미묘한 기분이 든다.




언어는 과연 생각을 지배할까

과학적인, 혹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논쟁은 언어와 생각의 관계이다. 아주 오래전 인류가 탄생했을 때, 언어 이전에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원시 인류는 생각을 비언어적 표현, 예를 들면 그림, 음악, 춤 같은 걸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사고가 획기적으로 변화를 맞이한 것은 아마도 언어의 탄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리라. 언어 이후의 인간은 생각을 서로 쉽게 교환하고,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됐고 이처럼 언어를 통한 생각의 교환 속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간의 생각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언어는 생각을 지배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일까?



오직 언어로만 이루어진 존재

영화 얘기는 시작도 안하고 느닷없이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영화의 주제가 언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테오도르의 직업이 대필 작가라는 것부터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본인은 공허하고 허무한 삶을 살고 있지만, 타인의 감정(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는 탁월한 사람이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쓰는 직업이라는 상징부터가 테오도르가 지닌 생각과 언어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주인공(?) 사만다는 어떨까? 현실의 육체는 존재하지 않는 녀는 오직 언어(대화)로만 존재하는 OS이다. 이러한 그녀의 형태는 앞서 이야기한 언어와 생각의 관계를 넘어 '우리는 소통이 되는 존재를 우리와 동일한 존재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주제를 떠올리게 된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언어가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언어는 감정을 흉내낼 수 있을까

극중에서 사만다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테어도르는 처음에는 낯설어 하지만 순식간에 친해지고 곧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다소 비현실적인 이 상황은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의 미친듯한 연기력(이 배우가 2019년에 조커를 연기한 그 배우라는 것을 두 영화를 다 보고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과 사만다의 목소리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 덕분에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언어는 생각을 나누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감정은 나누는 방법이기도 하다. 극중에서 실제 사람이 아닌 사만다지만 테오도르에게 누구보다 진짜같은 감정을 표현한다. 이런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는 관객 역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언어의 그 뒷면에 존재하는 것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감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는 것처럼, 언어가 우리의 감정마저도 지배할 수 있는 것인가. 그 감정인 진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진짜 실체와 가짜 감정, 가짜 실체와 진짜 감정

영화 전체의 흐름을 보자면 매우 훌륭한 전환과 대비를 보여준다. 진짜 실체(대필 의뢰를 한 사람들)의 가짜 감정(대필 편지)를 쓰면서 본인 역시 진짜 감정을 가지지 못했던 주인공이 가짜 실체(OS)의 진짜 감정(사만다)를 만나면서 진짜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멋진 은유임과 동시에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로써도 매우 의미심장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많은 감정적 관계들이 현실이 아닌 온라인, SNS 속 관계로 바뀌었고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화된 듯하다) 그 뒤에 존재하는 실체는 깨닫지 못한체 업로드되는 사진과 영상, 텍스트 위주로 사람들과 그들의 감정을 만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엔딩, 건물 옥상에서 친구 에이미와 말 없이 해뜨는 모습을 보는 풍경은 결국 실체를 통해서 진정한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상징처럼 보인다.



감정도 사랑도 오해도 결국은 언어에서 비롯되는 것

사만다고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은 대부분 언어를 통한 대화에서 비롯된다. 감정을 나누고 사랑에 빠지고 오해를 하는 모든 과정을 언어가 지배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진짜 사람처럼 한숨쉬는 말버릇을 거슬려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언어 혹은 뉘앙스가 전하는 이해와 오해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안타깝게도 언어를 통한 소통 혹은 감정의 교류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거꾸로 수 많은 오해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 때문에 오해하게 되는 혹은 오해받게 되는 경험들을 떠올려보면 언어가 가진 능력 만큼이나 한계 즉, 생각이나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는 수단이라는 점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테오도르, 차라리 고양이를 키우지 그랬어요

고양이를 키우는 (모시는) 집사로써 영화를 본 후 그런 상상을 했다. 허무에 지쳐있던 테오도르가 새로운 OS를 설치하는 대신 고양이를 한마리 키웠으면 어땠을까. 반려동물은 사람의 입장에서 매우 비언어적인 존재다. 특히나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강아지보다 사람의 말을 들은척도 안하는 고양이는 더욱 비언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녀석들이 주는 힐링이 있다. 언어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비언어적인 감정 교류에도 수 많은 다른 종류의 오해와 소통의 오류가 있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 언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주는 위안도 그만큼 크다.


우리는 오직 실체를 통해서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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