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부모는 아군이라고요.
브런치에 유치원 교사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꼭 쓰고 싶었던 주제가 있다. 바로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유치원 교사로 일 하는 내내, 퇴사 후 꾸는 꿈에서까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유아, 동료 교사, 상사가 아니라 바로 몇몇의 학부모였다. 내게 처음 장이 꼬이는 고통을 알게 해 준 사람, 내가 이 정도로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알게 해 준 사람, 차라리 눈앞에서 죽어버리고 싶다 생각하게 한 사람도 모두 학부모였다. 소위들 말하는 진상 학부모.
이 소재에 대해 몹시 쓰고 싶었지만 써도 괜찮을지 많이 고민했다. 내가 자칫 내 감정에 격해져서 세상 모든 학부모에 대해 진상 프레임이라도 씌우게 될까 봐 걱정되서였다. 나는 <유치원 교사 VS 학부모> 구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 힘들었던 과거 일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뿐. 그리고 조금이나마 누군가라도 유치원 교사들의 고충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세상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이 유치원 교사에게 무관심하다. (유치원 교사의 잘못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학부모라는 단어 앞에 진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안타깝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교사를 힘들게 하는 진상 학부모란 어떤 사람일까? 찰나에 온갖 사례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메모장을 보니 예전에 내가 진상 학부모에 대해 이렇게 적어놨더라.
1. 말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
2. 요구가 끝이 없는 사람.
3. 내 자식만 귀한 줄 아는 사람.
4.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
5. 가족 구성원 간 소통하지 않는 사람.
6. 스스로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
7.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
딱 봐도 어디를 가더라도 진상 소리 들을만한 유형들이다. 1번부터 7번까지 유형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유치원 교사를 단순히 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혹은 내가 이겨야 하는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교사를 평가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말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은 유치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미 욕을 먹고 있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가자. 교사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금기어가 있다.
"선생님은 애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절대 금지! 아주 차갑게 마음이 돌아서는 마법의 주문이다. 아이에게 가정에서 이런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는 말을 하니 돌아온 대답이 애가 없어 모른다니? 그때 '그럼 당신은 애가 있는데도 모르는 건 바보라서 모르냐?'라고 욕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제발 화난다고 교사들한테 무슨'년' 좀 쓰지 말자. 최악이다. 그랬으면 좀 사과하고 퇴소 좀 해주길 바란다.
요구가 끝이 없는 사람! 이건 정말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입맛에 맞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은 거라면 개인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밑도 끝도 없는 보모 취급은 이제 치가 떨린다. 몇 달 전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가방에 선크림이 어쩌고 저쩌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이 나오더라. 제발 그런 건 집에서 하고 오자.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사용방법을 가르치고 보냈으면 좋겠다. 매년 꼭 들려오는 "사진이 적어요." 남는 건 사진이고, 내 아이의 모습이 궁금하겠지만 사진 찍으러 보내는 거 아니잖아요. 사진을 찍는 동안 교사의 시야가 좁아지고, 신경이 둔해진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누군가 다치는 것보다 사진이 적은 게 낫잖아요.......
내 자식만 귀한 줄 아는 사람.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난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 어렵게 가진 아이라서 애틋하겠지만 한 반에 애가 20명이 넘는데 이중에 어렵게 가진 아이가 또 없을까? 학기 중에 아이를 놓치는 학부모는? 임신이 빨리 되었다고 해서 고생 없이 출산한 학부모가 있을까? 내 아이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한 걸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 그리고 담임교사에게 다른 아이 흉은 왜 보시는 거죠? 맞장구쳐줄 줄 알았나요? 다 내 새끼입니다. 욕하지 마세요. 편들어주지 않으니까요.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 말이 안 통한다. 정말... 안 통한다...
가족 구성원 간 소통하지 않는 사람.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고, 특히 아이와 대화를 잘~ 나누면 습관성 오해가 줄어들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세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지만, 육아에 조금도 관심 없고 등하원 한 번 안 하던 아빠나 할머니가 따질 때만 나서서 그동안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교사와 엄마가 나눈 대화들 전-혀 모르고 으름장만 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교사가 여자라는 것과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점을 악용해서 위협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지 맙시다.
스스로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 병원을 가자. 스트레스가 심해 보인다. 양말 바닥이 까맣다는 이유로 밤늦게 전화해서 따지고, 새벽부터 우리 애가 이래서 속상하다 저래서 속상하다 장문으로 카톡 남겨놓고, 알고 보니 내 아이 잘못이면 감싸느라 또 다른 트집 잡고.... 유치원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말고, 전문 상담가와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분노 원인을 찾아내길 바란다.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 부모의 역할과 교사의 역할은 다르다. 아무리 좋은 교사도 부모를 대신할 수 없다. 교사가 열 번을 안아줘도 부모가 안아주는 한 번이 아이에게 더 소중할 수 있다. 사랑한다면 돌보자. 입히고 먹이고 씻기는 게 부모가 할 일이 맞다. 지긋지긋하고 귀찮고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게 아이를 살린다.
유치원은 아이를 대신 양육해주는 곳이 아니다. 교육기관이며 유아에게 사회적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돌봄'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제발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다른 한 가지는 교사와 부모는 아군라는 사실이다. 아이의 올바른 교육과 성장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협업하는 관계란 말이다. 교사와 부모가 서로 매너를 지키고, 서로 예쁜 눈으로 바라본다면 함께 하는 1년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중간은 간다. 그래야 아이를 더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