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우리 ○○가 사라져요?
드라마/영화에서 유치원 선생님과 통화하는 학부모의 단골 멘트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따금 엑스트라로 유치원 교사 역할이 나올 때가 있다. 주로 스토리에서 크고 작은 위기상황 연출을 위해 소모된다. 내가 몸 담고 있던 직업이어서 그런지, 잠깐 등장해도 드라마 속 교사의 모습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달게 되더라.
일과 중간에 먼저 하원 하는 아이를 배웅해주는 김에 놀이터에 앉아서 잠시 쉰다.
- 말도 안 돼. 다른 아이들이 교실에 남아 있을 텐데? 작가 누구야?
애들이 싸웠는데 양쪽 이야기 모두 들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한 명의 탓으로 몰아간다.
- 아니, 갈등 해결의 기본은 '따로 또 같이' 이야기 나눠보는 것 아닙니까? 저 선생님 이상한 사람이네? 작가 누구야?
아동학대
- 범죄 수사물에서 빠지면 서운하다는(누가?) 에피소드. 학대하는 교사를 향한 분노와 또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를 학대범으로 소모하는 작가에 대한 원망이 널뛴다. 아동학대라니! 저건 사람도 아니야. 저러면 안 되지. 자기가 힘들면 아이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퇴사를 해야지! 미친 거 아니야? 그런데 또 교사는 학대범으로 나오는구나... 그런데 그거 아니? 사실 아동학대의 주범을 주로...!!!!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거 다 거슬리지만 특히!
막장 드라마나 일일연속극 속에서 아이를 부모(주 양육자)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낯선 사람과 함께 하원 시킬 때 가장 할 말이 많아진다. 진짜! 작가 누구야?
말도 안 된다. 사전에 학부모에게 따로 연락도 없이, 낯선 사람이 왔다면 당연히 확인이 먼저다. 낯선 사람이 아닌 부모라 하더라도 별거/이혼 중의 부부라면 주양육자에게 확인해야 한다. 데리러 온 사람이 기분 나빠하더라도 아이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걸 우리 선생님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학부모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오면 절대 보내지 말아 달라.' 하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그냥 보내는 모습을 보면 환장할 노릇이다.
학기초에 학부모에게 귀가동의서를 받는다. 귀가 방법을 잘 지켜주시라는 내용과 함께 보호자 없이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인계할 경우 사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는 내용을 서면으로 남긴다. 학부모에게 요구를 했으면 당연히 유치원도 지켜야 한다. 아이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요? 아까 할머님께서... ○○이 데리고... 가셨... 가셨는데요?
말을 하면서 온몸의 피가 어딘가로 싹- 빠져나가고 손끝까지 서늘해지는 그 기분......
차량 하원과 도보 하원을 병행하는 아이가 있었다. 할머니가 차량 시간보다 먼저 데리러 오면 할머니와 하원 하고, 그게 아니라면 차량을 타고 하원 하는 아이였다. 손주를 예뻐하는 할머니는 자주 유치원으로 오셨고, 차량보다 도보 하원으로 돌아가는 날이 더 잦은 아이였다.
그날도 할머니는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왔고, 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유치원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유치원으로 전화가 왔다. 차량 지도 선생님이었다. 아이의 엄마가 차량 하원 장소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몇 초 안 되는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가는데, 피가 식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드라마의 부작용인가? 몇 초 사이에 드라마, 영화 속에서 봤던 온갖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아이를 데려간 후 엄마에게 이야기를 안 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 사이에 엄마와 할머니가 통화를 해서 확인했다더라... 그저 양육자들 간에 상황 전달이 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비록 너무 놀란 내 기대수명은 줄어들었지만 아무 일도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순간의 착각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데, 하물며 하원 사고라고?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심장마비로 관 짝 급행...) 근데 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 드라마에서 "뭐라고요? 우리 ○○가 사라져요?"라는 대사로 시작해서, "조금 전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성의 없는 말로(심지어 아이를 찾아 헤매는 부모의 모습 위로 목소리만 깔린다.) 대충 설명하더니, 극적으로 아이를 찾으며 끝난다. 그 뒤 유치원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끝나는 거다. 드라마에서는 손 털고 끝난 사건인데, 나만 옆 사람 붙잡고 교사의 어이없는 행동을 욕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늘 "저러면 안 돼."로 끝난다.
설마 나만 이러는 건 아니겠지. 많은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들이 드라마/영화 속 교사들의 모습을 보며 욕도 하고, 1분도 안 되는 장면에 감정이입을 할 것이다. 괜히 억울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 영화는 영화. 허구는 허구다. 앞으로도 TV를 보다가 저거 아니라고, 저렇게 하면 큰일 난다며 종종 열을 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반면교사 삼을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