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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문지기, 문 뒤의 세상

by 박나비

문지기라고 문뒤의 일들을 알 수는 없다.

문지기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지 문 뒤의 세상을 사는 사람은 아니니까.

문지기는 문 앞의 세상은 훤하지만 문 뒤의 세상은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문 뒤의 세상이 가장 궁금한 사람은 문지기일지도 모른다.

문지기는 기억 밖의 존재다.

문을 통과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문지기는 없다.

문지기의 숙명이다.


그 오랜 세월 문을 지키던 문지기는 문득 문 뒤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툭,

투구를 풀어 발밑에 내려두었다.

쿵,

갑옷을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휙,

긴창을 잡고 저멀리 던져버렸다.

문지기는 처음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자신이 지키던 거대한 문을 정면으로 마주쳐 보았다.

늘 문의 바로 앞에 서있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쳐다 본 적은 처음이었다.

문지기는 손을 뻗어 문을 밀었다.

그리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평생을 뒤라고 생각했던 방향이었다.

문지기는 문을 미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마침내,

문지기는 문 뒤의 세상을 보았다.

문은 닫혔고 문지기는 문뒤로 사라졌다.


문 앞의 세상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한 손에 긴창을 들고.

문 앞에 도착한 그는 바닥에 놓여있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다.

그리고 긴창을 들고 서서 문을 지키기 시작했다.


문지기라고 문뒤의 일들을 다 알 수는 없다.

문지기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지 문 뒤의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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