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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Dec 29. 2023

원감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보육교사의 언어

아이와 둘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데도

원감의 전화통화처럼 너무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는 샘들이 있다.

어머 저렇게 아이입장에서 생각을 하다니,

저렇게 차근차근 설명하다니,

저렇게 예쁘게 표현하다니,

저렇게 현명하게 설득을 하다니,

라고 느껴지도록 말이다.



속삭이듯 얘기하는 6세 반 샘은 아이와만(?) 대화하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엿듣고 싶어 진다.

그반 아이들은 등원하면 담임샘부터 찾는다.

"ㅇㅇㅇ선샘님(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어디어요?

밤사이 있었던 일들을 빨리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나고 3일 연휴를 앞둔 금요일

나는 분주히 마감을 하고 있었다.

교사실에선 내년에 이직의사를 밝힌 6세 반 샘을 앉아놓고 원감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잘린 말자락만 들어도 내용이 대충 짐작 갔다

어머니들이 주신 간식은 작은 것이라도 먼저 원장님한테 알리고 원장님이 샘들 드시라고 하면 그때 먹으라그 얘기였다.


며칠 6세 반의 하정이가 작은 밀폐용기에 호두강정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만드신 건데 반아이들과 한두 개씩 맛보라고 보내셨다고 했다. 내게도 줘서 한 개 먹었었다.


".... 그래야 원장님이 보내주신 어머니와 마주쳤을 때 감사인사라도 하는데.... 내용을 모르는 원장님은 당황하신 거예요.... 나한테라도 했으면 원장님에 미리 귀띔이라도 했을 텐데.... 그렇잖아요 선생님...."

원감은 특유의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로 더없이 따듯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했고, 이런 상황에서 신임샘들은 대부분 울었다.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으로 밀어놓고 자상하게 말로 구제해 주는 듯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에 방점은 '한테라도'에 다.

원장이 당황하고 어쩌고는 다 뻥이고,

자기가 원장을 극진히 대하는 것처럼 자기한테도 뭐든 갖다 바치고 챙겨달라는 사심 어린 얘기이.

이걸 여기서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고독감이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던 날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들은(가정으로 케이크 만들기 키트를 보내면서 생크림은 빼서 보내고, 행사날짜 바뀌었는데도 케이크 주문 변경 안 해서 케익 하나만 오게 하고, 외부행사 나가면서 휴대폰 두고 나가 원장 전화 불나게 만들고.....) 벌써 잊고 저렇게 태연하게 샘들 지적질을 하고 있는 거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는 줄 알고 메모를 하려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 볼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6세 반 샘을 두고 나는 퇴근 했다.


원감이 나갈 샘들을 못살게 구는 걸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연휴 전날에.

식단표만 보냈던  샘에게 나는 톡을 보냈다.


괜찮아?

걔가(누군지 알지?) 원래 말만 뻔지르해. 

타격감 1도 느낄 필요 없어.

알고 보면

..... 돌대가리야.


조금 있으니 답이 왔다.


ㅋㅋㅋㅋㅋㅋㅋ 

요 며칠 계속 그러셔서 힘들었는데...

이제 싸악 내려갔어요 ㅎㅎ


앞으로도 걔말에 현혹되지 말고.....

암튼 메리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조리사님이 있어 힘이 납니다.


원감이 실은 돌대가리라는 비밀을  샘에게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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