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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Dec 24. 2022

시골 생활은 내게 사치였다

소박해도 사치일 수 있어. 

양평에서 용인 도심으로 이사를 나오게 됐다. 


양평에서의 생활은 오래도록 꿈꾸던 시골 생활이었고 만족이 컸기 때문에 지출이 크다는 이유 만으로는 시골 생활을 접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집 문제가 얽히면서 엉겁결에 쓸려 나오게 됐는데 사실 아래 생각을 받아들이고서야 도시로의 이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없는 형편에 시골생활은 사치다.'


언제나 시골살이에 대한 나의 바람은 건전하고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형편에 맞지 않게 수입차나 명품을 구입하거나 자기 관리 비용을 많이 쓰는 것은 사치지만 수더분하게 작은 마당과 마을 생활을 누리는 꿈은 소박하고 예쁜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입과 비교해 큰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움에도 아랫돌 빼서 윗돌 채우는 시골생활을 고집하는 건 형편에 맞지 않는 외제차를 구입하는 사치와 한 끝 차이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서야 시골살이를 접어야겠다는 마음 낼 수 있었다.


결단 내리고 가족 찬스와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100% 대출을 일으켜 과감하게 도시에 입성했다. 누군가는 이제야 정신 차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람답게 열심히 살려고 한다고 축하하거나 아이들을 도시에서 가르치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안도하는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제야 정신 차린 사람이 되었는데도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가치 중심적인 사람이 사치를 그만두고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고자 했음에도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했다.


아마도 이런 문제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경력단절 문제는 시대적인 문제인데 도시로 나간다고 해서 금전적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경력단절 문제를 안고 시골 생활의 지출을 웃도는 대출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부동산 경기를 뻔히 알면서 최 고점에 이사를 해야만 할까?

시골 살이라는 오랜 꿈을 대차게 실행했지만 돈 때문에 포기하는게 맞나?

오랜 꿈이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라는건 너무 슬프다.

행복감을 주던 양평을 나는 떠났지만 그곳에 사는 대다수는 충분히 감당하며 그곳을 누리고 있다.

도시 학교의 경직된 분위기를 전해 듣거나 층간소음 때문에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경고를 종일 날려야한다.


사치를 내려놓고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고 나의 소중한 꿈이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낙오된 마음이 차올라 우울감을 만들었다.




도시로의 이사는 더 좋은 가치를 취하고자 갖은 것을 포기한 내 선택이었고 이미 선택한 일이니 내 선택의 장점을 크게 볼 줄 아는 지혜가 절실했다. 이 때 떠오르는 우화가 두 개 있었다.


배가 많이 고픈 사람이 호떡을 하나 먹었다. 너무 맛있었지만 배가 부르지 않아 하나를 더 먹고 또 하나를 더 먹다가 일곱 개의 호떡을 먹고서야 배가 불렀다. 배가 부른 그가 말했다. '아, 아쉽다. 제일 맛있었던 첫 번째 호떡과 제일 배불렀던 마지막 호떡 두 개만 먹었으면 돈이 덜 들었을텐데'. 좋은 것만 취하려 하고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다른 우화는 신포도 이야기다. 배고픈 여우가 높은 곳에 달려있는 포도를 먹으려고 펄쩍퍽쩍 뛰어봐도 손이 닿지 않자.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향해 '에잇, 보나마나 딱 신포도네. 맛없겠다'라고 말하고 쌩하고 돌섰다는 이야기다. 자기 합리화의 예로 쓰이는 이야기 지만 안되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기 보다 나름으로 제 갈길 가는 여우의 꾀를 빌려오고 싶기도 하다.


세상은 내가 보고자 하는 데로 보이이고 열린다고 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아름답고 행복했던 양평 2년 살이를 패배감 없이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려면 나는 어떤 입장을 갖아야 할까?

'일장춘몽을 그리워하는데 평가가 웬 말이냐, 난 단지 두근두근 그리워할 뿐이야'


남들에겐 해볼 만한 시골 생활이 내겐 사치였다 해도 그 시간들이 나와 가족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겠다. 몸으로 기억하는 맑은 공기, 새소리, 물소리, 푸르름, 공간의 울림, 등하굣길의 고즈넉함, 방학을 싫어하고 개학을 환영하던 아이의 학교사랑, 알 수 없는 가족들의 편안함, 짙은 어둠의 깊이와 달의 밝음, 시골버스여행의 설렘 등등.. 


시골에서 살았던 2년이라는 시간마저 우리에게 없었다면 무엇으로도 그 행복감을 선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선택으로 인해 경험하게 될 것들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을 믿는다.


현실에 대한 당연함을 거두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꽃피우고 싶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기꺼이 살아서 시골 살이라는 내 꿈이 언젠가는 사치가 아닌 행복감으로만 채워지는 그날에 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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