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저는 이번 달 말까지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남은 기간 동안 잘 마무리하고 다른 일 알아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집중을 하고 정성을 다하여 일을 하니 벌써부터 정이 들어버려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날, 출근을 하는데 사장님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금발까마귀 씨, 다음 주부터 일을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온다고 해서 수요일까지만 나오면 될 것 같아요. 고생했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번 달 말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저도 다른 일을 알아보고 그쪽에서 컨택이 와서 그만둘까 말까 하다가 사장님이 제 대체자를 못 구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저도 이미 익숙해진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사장님도 대체자를 찾을 필요가 없어서 서로 윈윈 하는 것이라 생각해 일을 당분간 하겠다고 말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월말까지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못 벌게 된 것에 대한 짜증남,
도움이 필요할 때 찾더니 이제 필요 없으니까 그만 와도 된다는 것에 대한 분노,
거기에 사장님의 페이크 인자한 미소에 화가 나서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장님, 저는 월말까지 일하는 것으로 합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 구해지니까 바로 자르는 것은 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배신당한 기분이 드네요!"
사장님도 제 분노를 느꼈는지 저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언제 내가 월말까지 하라고 그랬어? 금까씨가 다른 사람 구해질 때까지 있는다고 해서 나는 우리 금까씨 더 좋은데 하루라도 더 빨리 가라고 그런 마음으로 한 건데 이러면 안 되지!"
이런 식으로 한 마디 한 마디가 쌓여 순식간에 분위기는 살벌해졌고 급기야 저는 마지막 카드로 지금 당장 그만두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사장님도 흠칫 놀라더니 그만둬도 되는데 그러면 금까씨만 나쁜 사람 돼 어쩌고 저쩌고 하시면서 사람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합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잠깐 다툼을 멈추고 서로 잠깐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한 단계 물러서서 얘기를 하였고, 일은 다행히 원만하게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이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고 저는 한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똑같은 일을 가지고도 다르게 해석을 하고 언제나 '나는 옳다'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일을 그만두는 걸로 되어있었고 사장님은 당연히 본인 입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연히 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나는 이번 달까지 일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또 '내가 일해주는데 감히 나를 잘러?'라는 오만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사장님도 빨리 장기적으로 사무실을 봐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마침내 그 사람을 구해서 자신이 할 일을 한 것뿐이었지만, 일 할 사람 없을 때 도와준 저는 금방 잊어버린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내가 옳아'라는 세팅을 가지고 세상을 대합니다. 이런 태도와 선택이 쌓이고 쌓이고 커지고 커지면 친구와의 다툼 집안싸움이 되고 더 커지면 사내다툼, 정치싸움이 되고 전쟁으로까지 확대가 됩니다. 무서운 일이지만 인간의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인간은 동시에 자기 성찰의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옳아'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또 한 단계 나아가 그것을 성찰할 수 있다면 그 작은 파동도 커지고 커져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권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가 남긴 흥미로운 명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