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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미 Jul 30. 2020

토테미즘과 동상파괴

저명한 역사가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현재의 시대정신에 따라서 역사적 해석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모든 역사는 새롭게 쓸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동상철거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서양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들은 이제 ‘제국주의 산물’, ‘인종차별 옹호자’로 해석되고 있다. 이들을 영웅으로 기념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일과 다름없다.


그랜트파크에서 철거되는 콜럼버스 동상. 사진=AP 연합뉴스


동상은 인종차별 역사를 기억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동상은 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는 것이지, 과도 함께 기록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우상화의 의미가 크다는 말이다. 동상은 조각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 인물을 빚어낸 동상은 그 인물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세운다. 동상으로 빚은 인물도 장군, 선각자 같이 공이 큰 인물이다. 미술평론가 맬컴 마일스는 “동상은 과거 권력자의 담론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현재 권력자의 담론”이라고 말했다. 동상의 건립이 국민통합과 일체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말이다. 조지 워싱턴이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논란인 동상이 세워진 것도 민주주의 건국 이념을 기리거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공을 기리기 위한 의미가 컸다. 


더구나 동상이 세워지는 곳은 광장이다. 광장은 공공의 장소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장소에 동상을 세우는 일은 지역과 국가 공동체,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인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소련 붕괴 등 공산주의 담론이 무너졌을 때, 레닌과 스탈린 같은 ‘공산주의 영웅’의 조각상도 끌어내리고 파괴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우세하는 담론은 인종과 성별 등의 차별을 없애는 ‘PC(정치적 올바름)주의’다. 인종차별의 장본인인 ‘서양 영웅’은 사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인 ‘PC’와 다르다. 동상으로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다.


공동체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당하는 상징이라면 광장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박물관은 역사의 공과 과를 동시에 기억하는 공간이다. 물론,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반론도 있다. 동상 철거가 인종차별 역사 지우기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동상 철거는 ‘과거지우기’가 아닌 ‘인물 재평가’다. 이제는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과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인종차별 전력이 있는 인물을 동상으로 기리는 것은 인종차별의 역사를 외면하고 부정하는 일에 가깝다.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는 박물관 ‘토포그라피 데스 테러’가 있다. 나치당의 조직과 그들이 저지른 학살, 테러 행위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독일인에게 나치의 만행은 감추고 싶은 치욕적인 역사지만 나치 관련 문서와 사진 한 장도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고 있다. 역사적 과오는 어떠한 수정과 미화 없이 그대로 기억해야 한다. 논란이 되는 인물의 동상은 제국주의 미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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