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떼구르르꺄르르 Dec 05. 2022

나의 상수와 변수, t값

면접을 망친 후

어차피 정해진 상수와 값이 변할 수 있는 변수. 문제는 주로 변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상수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최근 한 달은 그랬다. 상수만 쳐다보고 합리화하느라 변수를 잊고 있었다.


한 달여간을 새로운 직장생활 적응이라는 미명 하에 공부를 뒷전으로 했다. 그러던 중 서류심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구술시험대상자가 되어있었다. 물론 구술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내 핸드폰 캘린더에는 서류심사 결과일과 구술 시험일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심산에서인지 철저히 무시하고 잊고 있었다. 닥쳐서야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미 시간은 흘렀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버렸다. 숙소는 비품이 없었다. 방바닥에 덩그러니 이불을 깔고 3달만 버티고자 했다. 게다가 출근시간은 새벽 4시.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알람은 3시 25분에 맞춰놓았다. 거기다가 새로운 곳은 미묘했다. 나를 구성원으로 100%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은 그 느낌. 나도 이도 저도 아닌 소속감에 방향을 찾지 못했다. 그런 느낌들을 견디느라 퇴근하고 나서는 보상 심보가 생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버렸고, 구술시험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다들 잘 몰라서 미안하다는 답변만. 그러나 힌트는 보였다. 모두 비슷한 이론을 이야기했다. 그 이론만 벼락치기로 준비하면 되겠군! 대학원 면접 예상 질문을 검색하고 자기소개, 지원동기를 연습했다. 그리고 전공지식은 푸리에 급수, 변환 개념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초조함을 온전히 견뎌야 했다. 하루하루가 찝찝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기특하게도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만큼 절박했나 보다. 온전히 면접에 집중할 수 있도록 ZOOM으로 진행하는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스터디룸도 예약했다. 정복도 준비했다.


면접 전날, 포르투갈과의 월드컵 조별예선이 있었다. 1대 1까지만 보고 얼른 잠을 청했다. 잠을 푹 잤다. 잠이라도 푹 자서 몸은 가벼웠다. 밖은 눈이 와있었다. 정복 위에 롱 패딩을 껴입고 스터디룸으로 갔다. 이것저것 모두 세팅했지만, "곧 호스트가 당신을 들어오게 할 것입니다"라는 글자만 한 시간 반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소개, 지원동기를 계속 읊조리고, 신호처리 이론들을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뭐라도 말하기 위해서.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준비한 자기소개는 두문장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교수님 연구실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당연히 나올 것 같았던 질문, "비전공자인데 할 수 있겠어요?". 교수님 연구실에서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했다. "영어점수가 높은데 어떻게 공부했어요?" 영어과정을 이수한 것과 업무상 쓸 일이 많았다고 답했다.


"전공 기초적인 질문 할게요."


올 것이 왔다.


첫 번째 질문은 "00과 추(?)에 대해서 말해보세요."


"아, 제가 질문을 잘 못 들어서... 00과.. 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00과 큐였다.................)


"그냥 다른 질문드릴게요. 랜덤 변수에서......(블라블라 아예 못 알아들음) 코릴레이션이 .....?????????????????????????"


와...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준비한 답변은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해 보세요"


"저는 이것을 임무로 받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임무를 달성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취지의 아무 말을 뱉고 면접은 끝났다.


면접이 끝나고 나니 허무함과 후회와 자괴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나는 시무룩한 사람이었고 그 시무룩함과 우울은 가족들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그냥 잠을 청했다. 낮잠을 실컷 자고도 저녁에 또 잠을 잤다. 일요일에도 낮잠을 또 잤다. 그만큼 힘이 없었다.


한 달여 만에 상담을 갔다. 면접을 망친 이야기를 당연히 했다. 합격여부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다만 공부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만큼 그 세계의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 세계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하루에 일정 시간을 노출시켜야 한다.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진짜 이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긴 있구나. 그 열망과 육아라는 핑계로 못해낼 것 같다는 회피에 휩싸여 있었구나. 나는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있었구나.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구나. 모든 것은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는구나.


입력값은 내가 정한다. 입력값이 있어야 출력 값이 있다. 입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출력만을 바랐던 나. 사실 알고 있었지만 생각할 힘이 없다는 합리화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걱정과 위축만 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퇴근하고 운동하고 씻은 다음, 스타벅스에 와서 노출을 시켰다. 물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수업이다. 그래도 매일매일 노출을 시킬 것이다. 이 세계의 언어에 나를 노출시킬 것이다. 수동적으로 지내지 말고 답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입력값을 넣어야지. 이미 정해진 것, 이미 써버린 시간을 자기 합리화하는데 더 이상 쓰지 말고, 남은 시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들을 내가 능동적으로 써야지.


사격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햇병아리 시절 선배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지나간 것은 신경 쓰지 말고, 한 발 한 발만 신경 쓰라는 답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한 발, 한 발에 집중하며 살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좌절하고 미루는 마음으로 쓰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