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이민자의 영어공부 (0)

“이제 영어 잘하겠네“

by yudrama




안녕하세요. 저는 뉴질랜드에 와있습니다.

멋진 자연경관, 푸른 들판과 양 떼들,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올리시나요?

제가 있는 웰링턴은 바다를 낀, 뉴질랜드의 행정 수도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오클랜드가 서울이라면, 웰링턴은 부산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4년 전 외국인 남자 친구를 따라 연고도, 계획에도 없던 뉴질랜드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남자 친구는 누구보다도 저의 말을 경청해주는 사람이었고, 대화를 중요시하는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 문화, 예술, 사회할 것 없이 어떤 주제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저의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 있었고, 없는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을 늦게 졸업한 20대 후반으로, 주변의 친구들이 그렇듯 커리어를 쌓는데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영화 연출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영화산업 내에서 더욱더 경력을 쌓고, 필름 메이커로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기반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교제를 하던 중 남자 친구가 어머니가 계시는 뉴질랜드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저희는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뉴질랜드로 가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영화라는 ‘꿈’과 ‘사랑’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무엇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렇지만 꿈은 대체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대체할 수 없다는 이성적이지 않은(?) 판단이 섰고, ‘오케이. 내가 외국으로 간다’.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이 더 큰 꿈을 위해 큰 경험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그렇게 미국도, 캐나다도, 호주도 아닌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떠나게 됩니다.


뉴질랜드에 온 첫 주는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웰링턴의 여름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한국과는 다른 주택들도 신기했고, 외국인들 한 명 한 명이 신기했습니다. 도착한 날 저녁에는 인도 레스토랑에서 커리를 먹었고, 그 주 주말에는 집 근처 블루베리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한 봉지 가득 수확해 와 블루베리 머핀과 에그타르트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집 근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양들과 말, 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온 지 이틀 만에 저는 눈물을 쏟고 맙니다. 당시 저희 옆집 이웃이었던 저희 또래의 Marie와 Matt가 저에게 환영인사를 할 겸 들른 날입니다. 문제는, 제가 그들의 하는 말의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통장을 계설 하기 위해 들른 은행에서도 은행 점원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키위)들의 말하는 속도는 너무 빨랐고, 발음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날 저는 남자 친구 앞에서 눈물을 쏟게 됩니다. 이제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남자 친구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제 실력에 맞는, 그리고 한국의 영어 교육인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제게 쉽게 말을 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남자 친구의 영어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인의 발음은 반도 알아듣지 못하겠던 겁니다.

그것이 4년 전 제가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해 느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