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등에서 정의하는 권한의 의미는 제도, 규정, 계약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부여된 직무의 범위로 본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쓰면 ‘어떤 사람이나 기관의 권리(權: 권리 권)나 권력이 미치는 범위[限]’를 뜻하다. 가령 국회는 법률을 제정할 권한’안에’ 있는 것이고 제정된 법률을 판단하는 역할은 국회의 권한 ‘밖’인 것이다. 서로 간의 권리의 범위를 규정함으로써 소모적 논쟁을 피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법률에서도 용어를 명확히 정의해 둔 바와 같이 역할의 범위가 분명히 있기에 그에 합당한 권리가 한정되는 것이다.
책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떠할까? 법률적인 해석으로는 ‘행위의 결과에 따른 손실이나 제재를 떠맡는 일’로 보고, ⟨속뜻사전⟩에서는 ‘꾸짖음[責: 꾸짖을 책]을 받지 않도록 꼭 해야 할 임무(任: 맡길 임)’로 정의한다. 흔히 ‘책임지는 사람(곳)이 있다 혹은 없다’고 평할 때 사용하듯이 꼭 해야 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나 조직을 말하기도 하고 실제로 결과에 따른 상벌이 지워지는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권한만 챙기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에 문제의 중심에 놓인 다는 사실을 많은 사건으로 학습했다. 삼풍백화점 경영진이 그랬고, 세월호 선장이 그랬다. 가까이는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인명사고도 책임의 회피로부터 출발했다. 권한의 회피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책임은 지지 않는 소식은 넘치게 많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률로써 책임을 더욱 강화하려는 사회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당장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결국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힘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회사라고 단정해보자. 회사의 팀장 혹은 부장 등 한 부서의 장을 맡고 있는 자들 역시 권한과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정적인 권리일 마저 분명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수반된다. 대표적으로 부서장에게 부여되는 권한은 작은 단위의 조직에서도 필요한 업무의 방향과 흐름 혹은 경중, 시작과 끝을 결정해 주는 역할이다. 소위 권한의 행사는 쉽고 편하고 달콤하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부서원들에게 분장하여 넘겨주고, 평가까지 하게 되는 권한이 있다 보니 일종의 권력이기도 하다. 부서에 부여된 예산을 집행할 권리까지 있어 소위 돈과 힘이 몰려 있는 자리다. 그러니 너도 나도 장(長)이 되고 싶어 한다.
책임은 어렵고 피곤하다.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엔트로피의 증가이지만 책임지는 행동은 엔트로피의 역행인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뜻은 무질서도가 커진다는 의미로 많은 권한이 행사될수록 챙겨야 할 상황들이 증가하는 의미와 유사하다. 그리고 거꾸로 무질서한 것이 정리된 상태로 움직이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이런 범주다.
책임 잘 지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단순히 강화된 법으로 억죄면 책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평온해질까?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책임은 떠넘기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법과 제도, 규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구성원들의 관심을 통해 지적해야한다. 권한을 지닌 자들을 감시할 권리는 그 구성원들에게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고 했다. 살아있는 정점의 권력도 두 번이나 파면 시킨 우리 국민들이다. 더더욱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직의 권력 대리인들 감시에 소홀해질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