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엔 ‘법’ 대신 ‘거리’가 있다
요즘 일부 고등학생들 사이에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 바로 친구들의 부모, 형제 등 주변인의 정보를 알아내 그 친구 이름 대신 부르는 행태다. 가령 ‘규칙’이라는 학생의 아버지 이름이 ‘엄격’이라면 규칙이에게 ‘엄격아’라고 부르는 식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그들 부모 소유의 것이 많은데 거기서 정보를 따 온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한다. 놀이의 방식일 수도 있겠고 놀림의 방식일 수도 있기에 마치 그 경계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힘의 균형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면 원만하게 해결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소위 선을 넘는 장난으로 예상치 못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출신별, 출생별 서열화에 길들여져 있는 아이들의 사고관이 표출된 방식이라고 본다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인격적 비하나 모독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간주할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한다기보다 ‘친함’을 이유로 선을 넘는 문화가 점차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 단일국가라는 명징한 용어를 통해 사회적인 통합과 단일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 결과 국가적인 대통합을 바탕으로 IMF와 같은 위기를 극복해 낸 사례도 있다. 반면에 전체주의적인 이념이 깃들어 소수의 피해를 눈감거나 축소하면서 개인이 감내해야하는 어려움도 증가하였다.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의 사업에 따른 토지 보상의 문제, 간첩 조작 사건, 학교 행사의 추진에 따른 개인별 개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상황 등이다. 정부와 개인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정부도 개인의 일탈로 인한 사회의 위기를 막기 위해 법률이나 조례로 방지를 해 둔다. 이렇듯 정부와 개인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적절한 거리는 법과 규칙으로 정리가 되는 데 비해서 개인들 간의 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리두기’는 코로나 시즌에 크게 유행한 단어로서 일종의 물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단어였다. 주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감염자는 일정기간 사회 혹은 주변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필요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써왔던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사람 간 거리를 두면서 상대 혹은 타인과 단절되고자 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일종의 ‘차가운’ 의미로서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관계에서의 ‘거리두기’는 타인의 자존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존중의 의미다. 즉, 가까운 사람일수록 경계가 흐려지기 쉬운데, 그럴수록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간섭이 아닌 존중의 거리다. 진정한 친밀감은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 속에서 편안함이 유지될 때 만들어진다.
세상은 점점 더 연결되고,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SNS상의 글은 넘쳐나고 팔로워 숫자를 늘이는 데 세상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관계의 진정한 깊이는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편안히 머물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내 주소록에 등록된 전화번호 갯수가 아닌 내가 느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편안함을 뜻하는 말이다. 삶은 정량적 평가가 아닌 정성적 평가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균형이 법으로 지켜지듯, 사람 사이의 균형은 마음의 법, 즉 존중과 배려로 지켜져야 한다. 거리가 곧 품격이다. 그 품격이 관계를 단단하게 하고,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