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사랑 편지 #3.
지아야, 오늘 네 방을 청소하다 보니 책상 위에 작은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이 보이더구나. 가끔씩 방문을 닫고 혼자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데 도대체 저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엄마는 너무 궁금해. 한 번은 네 방을 청소하다가 열쇠를 한 번 찾아봐야겠다 싶었는데 어디에 꽁꽁 숨겨놓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벌써부터 비밀이라니! 네가 청소년이 되면 아마도 그 일기장을 함께 보면서 깔깔 웃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일곱 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비밀 일기장이 필요하다던 네 모습을 잊을 수 없어. 진지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단다. 어쩌면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내 가슴팍 정도밖에 오지 않는 조그마한 이 생명은 어떻게 날마다 감탄할 만한 행동을 하는 걸까? 알파벳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학교에 들어간 너는 일 년 만에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했지. 마지막 학기 때는 선생님도 깜짝 놀랄 만하게 글을 써 내려갔어. 이 아이에게 글쓰기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하는 생각에 엄마의 가슴도 두근두근 얼마나 기뻤는지!
나의 장점을 닮은 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 참 행복하더라고. 엄마도 어릴 때부터 읽고 쓰기를 좋아했거든. 제법 글쓰기를 잘해서 백일장이나 독후감 쓰기 등에서 상을 받기도 했어. 학교 과제 말고 언제 나 스스로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생각해 봤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와 소설을 함께 써보기로 했던 때인 것 같아.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아. 둘이 열심히 쓰다가 그 공책을 잃어버려서 엉엉 울었던 기억만 생생하네. 그 이후로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쏟아지는 감정들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어나갔던 것 같아. 갑갑하고 짜증 나는 순간, 두렵고 슬픈 순간들을 일기장에 다 써 내려갔었지.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적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혼자만의 편지를 써보기로 했어. 누구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을 토해내기 위해 글을 썼던 것 같아. 돌아보니 글쓰기는 엄마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네.
김애리 작가는 「어른의 일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앞에 놓였을 때 일기장에 감정을 거침없이 적기 시작했다고 했어. 대나무숲에 고함을 지르는 심정으로. 글쓰기는 지금 내게 찾아온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 주지. 작가는 써보면 알게 된다고 말했어. 내게 찾아온 모든 감정에는 이유와 의미가 있음을.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마흔이 넘은 엄마에게도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나는 네 일기장이 모든 걸 가만히 들어주는 친구 같길 바라. 너만의 안전지대이길.
엄마는 지금처럼 온 식구가 잠든 깜깜한 밤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방안의 불은 다 꺼두고 차분한 빛의 스탠드 조명만 하나 켜두는 거야. 하얀 백지에 까만 펜 하나 꺼내두고 사각사각 글을 써 내려가는 그 시간이 행복했어. 지금도 너와 네 오빠, 네 아빠까지 모두 잠들었고, 엄마는 페퍼민트 티 한 잔을 옆에 두고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거실의 시곗바늘 소리와 손가락이 타닥타닥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 이따금 따뜻한 차를 홀짝홀짝 마실 때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리는 그런 고요한 밤이야.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내가 나를 이해하는 시간. 나를 보듬어 주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시간. 그 시간이 나를 살리고 나를 제대로 숨 쉬게 한단다. 네가 벌써 그 행복을 알게 된 것 같아서 엄마는 너무 기뻐.
오늘도 좋은 하루였네!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