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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당구장[2]

ep_2

by 섭이씨

백로가 손이 있다면 손도 희겠지. 백로가 백수로 오래 지내다 보니 가슴은 까맣게 그을려서 반달곰 무늬의 역 대비가 되어간다.


현석이는 와이프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시방을 하나 내었다. 빚으로 차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실천력만큼은 대단하다 싶다.

한창 피시방이 유행인지라 장사가 곧잘 되기도 해서 요즘엔 나도 피시방을 하나 차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석이처럼 컴퓨터를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먼저 시작한 석이가 시행착오를 나 대신해주었겠거니 하고 조언을 꼼꼼히 들으면 나라고 뭐 못할 일인가. 실천력이야 몰라도 사실 공부야 내가 석이보다 잘했지. 하여 현석이네 피시방을 현장학습 가보기로 했다.



“야야. 니 고삐리 아이가, 고삐리는 어데라도 쪼매 숨어가 피는 기 미덕이지 않겠나?”


자리에 앉으며 재떨이를 달라는 인근 고교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 석이는 이렇게 얘기를 했다.


“다른 데는 다 주던데예....”

하고 말끝을 흐리기는 해도 그 학생도 그리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하. 고삐리는 저래 다루면 되고’

오자마자부터 하나 배우는 느낌.


“카운터 컴퓨터에 관리프로그램 있으니 이걸로 시간 계산하고 돈 받으면 되고, 유료게임은 따로 조금 더 받도록 설정해 두고, 뭐 딴 거 없다. 모르면 살살 배아가미,”


딴 거 없다는 석이의 말에 솟구치는 자신감. 뭐 컴퓨터 빌려주고 쓴 시간만큼 돈 받는 건데, 어려운 것은 찾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업그레이드를 때맞춰 해 줘야 되는데 CPU클럭은 비슷하게 표기하는데 셀러론이 좀 싸기도 하고, 컴퓨터는 고장 날 때마다 사람 부르기 그러니까 포맷한 다음 원도를 다시 깔아주는데, 사운드하고 비디오카드는 따로 잡아 주야 되거든, 아, 메인보드도 패치를 깔아 주야 되는데....”

“본체를 요래 분해해가 요거 보이재? 이게 쿨링팬인데 이거 청소기로 함부로 빨지 말고 페인트 붓 가지고 살살 털어서 요 캔 스프레이로 불어서 청소하고, 파란 화면 자주 뜨면 일단 CPU랑 메모리카드 빼가 접점에 고무지우개로 닦아서 한번 해 보고....”
“야야, 몇 달 후면 밀레니엄버그라 하던가? 99년 12월 31일이 지나면 00년 01월 01일이 되는데 1900년 하고 2000년이 똑 같이 00년이 되어서는 머시 컴퓨터가 오작동을 한다나 우짠다나. 그래서 백신을 준비해야 하는데....”


‘......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석이가 내가 저의 경쟁업체가 될까 염려하여 미리 싹수를 자르려고 일부러 어려운 소리를 할 리는 없을 것이고.


현장학습을 몸소 체험해 보니, 이거야 원, 언감생심 피시방은 어려울 것 같고,

그다음으로 생각해 두었던 것이 당구장이다. 피시방에 밀려 망하는 당구장이 많았지만, 당구만 한 유흥문화가 또 있겠나. 어려운 시기만 좀 버티면 다시 부흥하리라! 사실 만화방보다야 낫지 않은가!!
그리하여.

벼룩신문에 나온 당구장을 몇 개 봐 두었는데, 오늘은 좀 싸게 나온 당구장을 가 볼 요량이다. 보고 괜찮다 싶으면 결정을 볼 작정이다.

그전에 두호를 먼저 만나고. 두호는 당구를 300점이나 치니 그쪽으로 좀 밝을 테고 내가 결정 내릴 때 분명히 조력이 되리라.

집을 나서니 티끌 하나 없는 가을 하늘이 파란색 파장을 맘껏 만들어 내고 있다. 일을 도모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두호가 약속장소에 먼저 나와 있다. 그가 약속장소에 먼저 나오는 일은 절대 없는지라 통상 친구들은 30분 정도 이른 시간을 약속시간이라 그에게 일러주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나온 것은 그에게 긴 백수건달 시간이 어떤 깨우침을 주어서가 아니라 내가 늦잠을 자 한 시간이나 늦었기 때문이다.


두호는 얼마 전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얼마 전 앞까지는 L전자 A/S 맨이었다. 길고 긴 백수 생활을 접고 직업훈련원에서 두 달간 직업교육을 받더니 한 달 남짓 일하고 그만두었다. 여관에 TV 수리하러 나갔다가 옆방 TV랑 바꿔치기한 것이 들통이 나자 이튿날 부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옆방 TV를 그랬냐고 물었더니.
“내 사수가 그래 하라더라고, 잘 안 고쳐지면 일단 바꿔놓고, 담에 또 A/S 들어오면 부품 미리 준비해가 다시 가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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