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만나는 오아시스
추석 연휴 포함, 늦은 여름휴가로 약 2주간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예전부터 목적지는 가보고 싶었던 시칠리아, 그리고 나의 최애 도시 피렌체 이 두 곳.
장시간 비행, 이탈리아 최남단 시칠리아의 뙤약볕 아래 혼돈의 카오스 같은 도심 운전, 에트나 화산 트래킹 및 1일 2 와인 하는 음주 생활로 열흘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딱딱하게 굳어 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시칠리아 일정을 끝내고 피렌체로 넘어온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구글 지도를 살펴보다 발견한 숙소 근처 요가 스튜디오!
바로 당일 오전 11시 수업으로 일일권을 끊었다.
https://maps.app.goo.gl/5EVwXNoJyE5yeVYv5
Hatha Yoga Anusara. Advanced Level. Livello avanzato
Tue 26th Sep 2023 @ 11:00 am
Paid €18.00 for a single class session.
내가 예약한 수업은 하타요가 어드밴스 레벨.
가벼운 클래스를 듣고 싶었지만 일정과 시간 관계상 이 수업만 가능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요가 초보자도 충분히 가능한 정도의 난이도였다.
몇 년 전 브루클린에서 요가 수업을 들었을 때는 미들 레벨이었음에도 고난도의 동작을 척척해내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당황하고 주눅 들었었는데, 피렌체의 요가 수업은 어드밴스임에도 상당히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가벼운 시퀀스로 진행되어 여행 기간 동안 긴장했던 몸을 풀어줄 수 있어서 오히려 부담 없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좀 더 액티브한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다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지만, 요가원 건물과 공간 자체가 너무 이국적이고 아름다워서 수업을 듣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었다.
무엇보다 요가 수련 중간중간 바깥에서 들려오는 두오모의 종소리는 황홀할 지경.
같이 수련한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주민으로 보였는데, 각양각색의 수강생들이 참석했다.
하얀 머리와 잘 어울리는 위, 아래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멋쟁이 할머니, 구릿빛 피부와 온몸이 근육질인 아디다스 탑을 입은 언니, 운동은 전혀 해보지 않은 것 같은 근육은커녕 지방도 없는 상당히 마른 체질의 학생 등.
선생님은 이탈리아어와 영어 8:2의 비율로 설명했는데 처음에는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고려해 최대한 영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이 보였지만, 이탈리아어로 얘기해도 대충 내가 알아듣고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을 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이탈리아어로 계속 진행하셨다.
이탈리아어라고는 '본조르노(buongiorno)', '보나세라(Buona sera)', '차오(Chiao)' 정도의 인사말밖에 모르는 나지만, 수업을 듣다 보니 들숨, 날숨, 중앙정렬 정도의 용어는 눈치로 배운 것 같다.
(요가 수업 갔다가 이탈리아어를 배워 옴)
여기는 한 시간 반 수업 중 처음 30분은 호흡으로만 진행됐는데, 평소 한국에서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주로 다이내믹한 동작과 플로우 위주로 수업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요가 수업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요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수업 방식도 천차만별이지만.
또 이탈리아어라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수업 중간중간 명상에 관련된 것이나 이론적인 부분도 꽤 많이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여하튼 평소와는 다르게 이국적인 공간에서 전혀 다른 방식의 수업을 경험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고 좋은 경험이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꼭 요가나 발레와 같은 일일 클래스를 들어보려고 하는 편인데, 특히 이번에는 장시간 여행으로 지친 몸의 긴장을 풀고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여행 갈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요가복을 챙겨야겠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해서 요가복을 따로 안 챙겼었는데,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요가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요가복 때문에도 갈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그래도 가길 정말 잘했다.
역시 고민될 때는 일단 하고 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