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회사를 위한 하나의 볼트가 된 기분이야” 반짝거리는 동그란 철제 식탁에 앉아 고기를 뒤집다 말고 대한이가 한마디 던졌다. 나란히 앉아 있는 형선이는 ”그럼 난 너트“라고 대답했다. 술기운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양쪽 뺨이 우리 앞에 놓인 숯불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분명 슬퍼 보이는 얼굴은 아닌데 둘이 픽-하고 서로 쳐다보며 웃는 모습이 요상하다. 나는 ”배부른 소리 하네 “라고 말하고 집게를 뺏어와 대한이가 뒤집던 고기를 마저 뒤집었다.
우리는 밥을 긴 시간 동안 먹고 나왔다. 인터넷에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럴까?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아직 줄을 길게 서있다. 나는 늘어진 줄이 언제 없어질까 가만히 구경하고도 싶었지만 걸음이 빠른 친구들을 먼저 보내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망원동 과일가게 앞 사거리에서 헤어졌다.
친구들은 벌써 좌로 우로 멀리 갔다. 그리고 나는 사거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생각했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 30년제 회사에 들어간다라…’ 억울한 건 아닌데, 뒤에 따라다니는 제(制)라는 글자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 놈과 죽을 때까지 함께하다가 결국 제(祭)사상이나 받아먹을 생각을 하니 삐걱삐걱 내 머릿속 볼트 하나가 회사에 맞춰지기도 전에 흔들리는 기분이다.
‘쟤, 저기서 랩 하는 애가 내 친구야’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게 나의 꿈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7년 전쯤에는 친구들이 ‘너는 쇼미더머니 안 나가냐’라고 물어보곤 했는데, 이제는 친구들이 내게 ‘쇼미더머니 봤냐’고 물어본다. ‘어제 봤어? 저 래퍼 진짜 잘하더라’, ‘이 래퍼는 가사 쩔더라’ 등등. 정작 나는 쇼미더머니도 챙겨보지 않는데 말이다.
소화가 다 돼서 그럴까. 아까 고깃집에서 다 먹지 않고 불판 위에 남겨두고 온 몇 점의 고기가 생각난다. 자잘한 고기 한 점부터 그보다 큰 후회까지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각자만의 렌치를 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파란 불로 바뀌길 기다리던 사거리 신호등은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 파란불-빨간불은 작동하지 않았고, 노란불만 껌뻑이고 있었다. 건너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