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다자이오사무/민음사
★★★
인간실격을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대학생 때, 한 번은 사회인이 되어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기억 속 나의 위선적인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주인공 요조는 사람들에게 익살꾼으로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는 인간이다. 그에게 존경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완벽하게 사람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이에게 그것을 간파당해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익살스러운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다가 다케이치라는 친구에게 '일부러 하는 행동'임을 간파당한다. 그에게서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과 여자가 홀딱 반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도쿄로 상경하고부터 그의 인생은 요동친다. 호리키라는 남자를 만나 공산주의를 배우고, 쓰네코라는 여인을 만나고 이후 새로운 여자와의 끝없는 인연들이 생기면서 인간으로서 '실격'하는 자신을 본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단념할 수 없었던 요조의 삶은 유년기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읽는 내내 요조라는 인물이 이해 가는 점이 있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역시 있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요조,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사람을 두려워하고 정작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 요조의 모습은 마치 미성숙한 사춘기의 모습 같기도 하다. 상경해서는 한량처럼 지내다가 돈이 떨어진 도련님 같기도 했다. 여자와의 관계는 결핍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자살 시도 후 조사를 받다가 검사에게 연기하는 것을 한 번 더 들키는데 인생에서 두 번째 연기 대실패의 기록이다.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부채의식을 투영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리대금업을 통해 축적한 부, 공산주의를 접하고 자신이 단두대에 목이 매달리는 쪽이라는 인식, 생활비 지원을 끊는다는 가족의 압박에 옳다고 생각한 공산주의를 버린 것. 다자이는 이러한 삶 속에서 타인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극도로 고통스러워한 것 같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다자이는 '자살시도'라는 방법을 택했다. 요조 역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살이라는 방법을 계속해서 택한다. 함께 동거하던 요시코가 상인에게 겁탈당하고 이를 지켜보는 요조를 보고는 '정말이지 어렵다'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체면치레를 한다. 얼굴 표정과 속마음이 붕어빵 기계 마냥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들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요조가 여자들을 한 번에 홀리지 못하는 외모였더라면 요조의 인생이 조금은 더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일본 애니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정신오염물(?)이라고 불리는데 인간실격 역시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자살이라는 것이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이란 것이 원체 알 수가 없고 타인 역시 그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요조는 조금 더 신뢰와 위선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너무 섬세하고 연약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러지 못했을 테다.
다자이의 또 다른 자화상 요조는 다자이가 살던 시대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나로선 완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정말로 끈질기고 대단하면서도 너무나 유약한 모순덩어리가 확실하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괴로움의 시간 끝에 자살로 간다니 뭔가, 뭔가 아닌거 같았다. 혁명의 실패 끝에 위선과 허위를 넘어서지 못한 개인의 자기파괴인건가. 이러한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해주는 것 같다.그래서 현대에 와서도 인간실격이 계속 읽히는 건가 싶었다. 고전이 주는 질문들이란 평생을 걸쳐 찾아봐야 하는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