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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Jul 02. 2023

혼자서 이루는 것만이 정답은 아냐

독학과 솔로플레이도 적당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요즘 정말 무섭다. 남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성취해 나가는 걸 좋아하는 나의 성향은 나름 낭만적이기도 했지만, 배움의 방향성이 틀렸음에도 인지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릴 적부터 재미를 붙였던 영역은 남들보다 훨씬 오래, 깊게 즐기는 편이었다. 항상 새로 출시된 온라인 게임을 친구들과 시작하면 친구들이 다 접을 때까지도 혼자서 즐겼었고 게임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다른 취미활동 등을 시작할 때에도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에는 혼자서 오래 몰입하곤 했다. 남들에게 배우는 것보다는 도움 없이 독학해서 성취해 내는 것을 선호했고 진지하게 선수의 길을 고민했었던 축구 역시 그랬다. 


어른들의 지도 없이 초등학생이 독학을 한다고 얼마나 했을까. 그럼에도 무작정  손 가는 대로 배우려는 시도들을 했었다. 축구의 경우 어릴 때부터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친구들처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초등학생 때 큰 서점= 광화문 교보문고였기 때문에 그곳 구석에 있던 스포츠 교본 코너에서 축구 기본기 책을 찾아내 구입해서 2~3 회독은 한 기억이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없던 시절이기에 다음 축구 카페에서 일반인들 중에 킥을 잘 차는 사람들의 영상들을 보며 눈으로 연습하기도 했고 교본을 보며 기본기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려 했는데, 사실 엄청 큰 도움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감각적인 운동이기도 하고 팀 스포츠 특성상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게 무척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로 또래 친구들이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할 때 나는 학원을 빠지고 해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공을 찼던 아이였기 때문에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골목대장노릇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코칭을 받았던 기억은 중학교에서 방과 후와 방학 때 했던 축구교실이었다. 코치님은 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체육인 엘리트 코스를 밟으신 분이었고 다른 학교에서도 강의를 다니시던 젊은 분이셨다. 난 그때 진지하게 정식 축구부 입단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비공식 축구부의 수업쯤은 별 거 아닐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과 으스대는 자신감이 함께 있던 상태였다. 중학생의 체력증진을 위한 건전한 취미의 수업 취지였으나 중학생들의 승부욕은 남달랐고 다들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었다. 그때 팀의 주장도 맡고 제법 하고 싶은 플레이를 했던 터라 꼭 정식 축구팀 입단 테스트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이런 비정규 학원 축구에서는 크게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코치님의 피드백은 달랐다.

요약하자면 나는 전형적으로 동네에서만 볼 좀 차는 애였다. 자세하게는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기에 기본기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둘쨰로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도 역시 많이 부족하다는 점. 셋째로 개인기가 좋다 한들 날고 긴다는 애들 사이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 등. 그냥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자세히 말해준 셈이다. 동네에서 배운 축구에서 굳이 굳이 장점을 찾자면 창의성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 역시 기본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는 건 축구를 관두고 몇 년이 지난 뒤에 안 것 같다. 코치님의 조언은 진심어린 현실적인 조언이었고 들었을 땐 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축구선수의 길로 들어서진 않았으니 코치님의 선구안이 있었구나 싶다. 


동네에서 독학으로 몇 년 동안 몸에 밴 안 좋은 습관들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경기의 템포조절이나 드리블을 쳐야 할 상황과 아닐 상황의 구분, 볼을 터치하는 과정에서의 안 좋은 동작 등. 일반인의 눈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디테일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것이 전문가들이었고 나는 합격점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흥미를 느낀 것에 혼자서 성취해내고 싶어 하는 기질인지 성격인지는 분명 하나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막상 어떤 것들을 새롭게 익힐 때에는 극한의 비효율을 낳기도 했다. 지름길을 내버려 두고 먼 길을 가는 것이랄까? 이러한 과정 자체가 배움의 일부이고 솔직하겐 낭만적이라고 느껴지지만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사회인이 되고 꽤 많이 느끼고 있다. 


특히, 이런 성향이 일적으로 들어가면 단점이 커지는 것 같다. 취미의 영역이 아닌 일의 영역에서도 관성적으로 행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을 배우고 있는 과정에서 선배들이 방식을 알려줬음에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내가 고민했던 방식으로 시도했던 경우가 꽤 있었고 결국은 지름길은 내버려 둔 채 가시밭길에서 헤매는 나를 발견하고 선배들이 손을 내밀어 꺼내줬다.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 시도해 보되 방향이 틀린 것 같다면 빠르게 이정표를 확인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잘 안 되는 자신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앞 만 보고 주위를 못보는 이런 내게 선배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고, 낑낑대며 고민하는 것이 힘들다면 아프다고 말하면 된다.'는 조언을 해줬다. 부상당한 축구선수가 아프다고 말 안 한 채 뛰면 아무도 부상인지 모르는 것처럼, 내가 배움의 과정에서 방황하는 것 같다면 언제든 주위를 둘러볼 필요도 있다는 것을. 취미의 영역에서는 혼자서 헤매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자고 오늘도 다짐하며 이불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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