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가 되니 보이는 것들
생산하는 마음은 남다르다. 사실 스스로를 늘 ‘생산자’라고 생각했다. 항상 무언가를 끄적이고 만들고 나누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없었으니 비영리 가공자의 삶에 더 가까웠다. 비영리 가공자의 삶도 나쁘진 않았다. 내가 좋아서 쓴 글을 보고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좋으면 좋은 거고’로 성립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구매라는 행위를 할 때는 어떠한 가치를 기대한다.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 지거나, 소비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체성을 표할 수 있을 만큼의 기대에 상응하는 가치를 줘야 한다. 그게 생산자의 의무이다.
최근에는 이런 의미에서 진짜 ‘생산자’가 되었다. 그동안 내 기록을 지켜보던 구독자를 대상으로 유료 독서모임을 열었다. 재능 마켓에 노션 포트폴리오 템플릿도 만들어서 올렸다. 수요가 생기고 돈을 받자, 안 그래도 투철하던 책임감이 넘쳐흐르게 됐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생산자가 된 후에 새롭게 깨닫는 것이 많다.
먼저 모든 재화에 감사해졌다. 진정성 있는 재화를 생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은 짜집기로 복제품을 만들고선 원작자보다 더 많은 돈을 취하는 사람도 많다. 어찌 보면 영리하지만 영악하다는 사실은 숨길 수가 없다. 그저 그들에겐 내공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 다 무너질 거라고 믿는 수밖에. 대신 진심을 다해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처음 유료 독서모임을 기획했을 때 비용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에 필요한 워크시트를 만드는데 시간과 노동이 투자되어야 했다. 단순 시급으로만 계산해도 무료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구독자 분들께 돈을 받자니 그것도 영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고민 끝에 비용을 책정하되, 나중에 후기를 올리면 책 한 권을 골라서 선물해드리기로 했다.
모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유료로 열기를 잘했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이다. 나 또한 책임감이 더해져 퀄리티에 더 공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지불한 금액의 몇 배의 가치를 얻어가는 자리가 됐으면 했다. 특히 책을 읽고 작성하는 워크시트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결과 ‘잘 짜인 워크시트를 보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는 호평을 받았고, 모임도 6주 동안 잘 운영되었다. 돈을 받는 것도 어렵고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건 더 어렵다. 이러다 보니 유료로 재화를 만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도 그들의 고민과 시간이 담겨 있을 것이다. 타인의 돈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성 있는 재화를 만들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후기가 소중해졌다. 소비자로 물건을 구매하거나 식당에 다녀오면 리뷰를 남기는 편이다. 사실 리뷰를 쓸 때 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솔직한 나의 생각을 담아, 다른 구매자나 사용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생산자가 되어보니 리뷰 하나하나에 받는 영향이 컸다.
재능 마켓에 노션 포트폴리오 템플릿을 올렸는데, 구매 확정이 될 때마다 리뷰가 달린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모두 별점 5개이지만 혹시나 좋지 않은 평이 달릴까 봐 노심초사한다. 괜히 배달 앱에서 사장님들이 리뷰에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문제지만, 초보 생산자에겐 모든 리뷰에 신경에 곤두세워진다.
그리고 소비자가 쓰는 리뷰도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리뷰 또한 소비자의 시간이 투여되는 일이다. 값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샀으니 기브 앤 테이크는 이미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굳이 본인의 시간을 들여 리뷰를 쓴다는 건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생산에는 돈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산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기 중 하나가 ‘돈’이라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나도 자본주의 사회에 속한 사람이고 돈도 좋아한다. 하지만 생산의 목적이 오롯이 돈은 아니다. 내게 생산은 ‘공유’하는 행위에 가깝다.
아무리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해도 세상에 누군가 혼자 만든 것은 없다. 수 세대를 거쳐 여러 사람들이 집단 지성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정말 잘 만든 서비스가 있다고 치자. 그게 정말 한 사람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자라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 책, 문화에서 얻은 것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생산은 나누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받고 깨달은 것을 종합해 더 쉽고 편리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유해야 한다. 나 또한 독서 모임도 기존에 있던 ‘책’을 활용했고, 포트폴리오 템플릿도 ‘노션’이란 서비스가 없었으면 만들지도 못했다. 다만 내가 잘하는 ‘정리’의 기술을 더해 모임을 운영하고, 편리한 템플릿을 만들어 재공유하고 있다.
생산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생산하는 모든 마음은 남다르고 아름답다. 앞으로도 모든 재화와 리뷰에 감사하며, 돈보다는 공유에 초점을 맞추는 생산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