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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Oct 13. 2022

박찬욱은 왜 자기 글을 고치지 않는 걸까?

<박찬욱의 오마주> 안 읽어본 후기

<박찬욱의 오마주>는 칸의 남자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이 평론가 시절에 쓴 영화 평론집이다. 익히 들어온 명작들보다는 대부분 B급으로 분류되는 B급영화에 쏟은 애정의 결과물이다. 세상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영화 제목들이 목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들은 썰로 그는 평생 2만 편의 영화를 본 씨네필이다. 그에게 아무 영화 제목이나 말하면 '아, 그거...' 로 운을 떼면서 영화의 모든 연출과 감독에 대한 뒷 이야기가 우후죽순 쏟아질 것이다.

  <박찬욱의 오마주>는 내 책장에 없는 책이다. 물론 서점에서 몇 쪽 훑어 읽었지만 볼 엄두가 안 나는 영화에 대한 글을 읽어봤자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구매할 의욕이 없었다. 일단 그가 쓴 영화의 반이라도 보자. 어떤 영화는 왓챠에 있지만 <오마주>에 쓴 영화의 대다수는 돈 내고 다운 받는 사이트에서도 찾기 힘들다. 매대에 쌓인 그의 책을 보면 늘 고민한다. 사놓고 쟁여두냐, 거진 절반 정도의 영화는 보고 사느냐. 아직까지는 후자다. 다행이다.


언젠가, 그의 책(표지)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여타의 평론가, 작가들이 쓴 영화 평론이 다른 사람들의 입이나 글로 인용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일 년 전에 썼든 십 년 전에 썼든 그 영화에 대한 평가와 문장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린다. 궁금한 점은, 십 년 전에 쓴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을 작가가 십 년 뒤인 지금에 와서 바꿀 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그의 저서에 박찬욱은 영화 <셀레브레이션>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다. <셀레브레이션>을 본 다른 사람이 영화 리뷰를 하면서 그의 문장을 인용한다고 치자. <오마주>의 초판이 2005년에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독자들은 2005년의 박찬욱의 문장을 17년이 지난 지금, 고치지도 못 하는 책의 형태로 수용하게 된다. 읽은 사람은 곧바로 아, 박찬욱은 이 영화를 이렇게 보는 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 박찬욱이 몇 년도를 사는 박찬욱인지는 모른다. 우리는 최소 15년 전에 쓰인 글을 토씨 하나 안 고친 2022년에 그대로 읽고 있다. 나는 (최소) 15년 동안 박찬욱이라는 씨네필이 <셀레브레이션>을 다시 봤는지 궁금하다. 만약 어떤 작가가 <셀레브레이션>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보인 그의 글을 2022년에 인용한다면 지금의 박찬욱은 어떤 마음일까. 다시 보니 그 영화가 좋게 보였다면 속으로 좀 억울하지 않을까?


죽은 동물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드는 박제사처럼, 출판사는 영화 평론들을 한데 묶어 평론집으로 낸다. 박제사의 손을 탄 동물처럼 다 쓴 영화 평론도 출판사의 손길로 재탄생한다. 본래 죽은 동물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평론집에 안 들어간 글들은 태초부터 무생물이다. 글이라는 무생물에서 책이라는 무생물로 묶이면 이때의 글들은 제법 생기있어 보이는 상품이 된다. 때깔 좋은 표지, 하얗고 깔끔한 종이, 저자가 유명 평론가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삼위일체가 어우러진 책으로 묶인 글들은 흐르는 시간에 저항한다. 십 년이 지나도 그의 문장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생각을 이렇게 하다보니 최근부터는 어떤 작가의 영화 리뷰를 보면 스스로 되뇌인다.


그는 그때 이 영화를 이렇게 봤구나.


나는 여기서 '그때'를 강조하고 싶다. 영화 리뷰는 철학이나 과학처럼 계보학이 따로 없다(영화 비평이 아니라). 아무리 그가 <셀레브레이션>을 몇 년전에 비판적으로 봤다 한들 지금도 그렇게 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단지 그 영화에 대해 다시 쓸 생각이 없거나, 쓰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그의 새로운 의견을 우리는 듣지 못한다. 마냥 아쉬울 뿐.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비트겐슈타인처럼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박찬욱의 <셀레브레이션> 리뷰를 희망한다면 부질없는 짓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영화 리뷰를 볼 때면 생각한다. 지금의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내가 재밌게 본 이 영화를 몇 년 전의 그는 비판했는데 지금도 그럴까(생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 내가 싫어하는 이 영화를 몇 년 전의 그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지금도 그럴까? 몇 년 전에 쓴 자신의 글에 반박하고픈 욕구는 없나? 그냥, 한 명의 영화 리뷰 애독자로서 드는 궁금증이다. 어떤 영화 잡지에서든 <다시 써보는 영화 평론> 특집을 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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