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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Feb 04. 2023

세모의 꿈 - 인체라는 슬픔의 삼각형

<파편들>.1975 - NOW YOU SEE ME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끔 어떤 영화는 사건의 원인을 보여주는 대신 그 원인이 휩쓸고 간 이후에 펼쳐지는 사건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보면 진실을 밝혀내고 싶다는 욕구를 떨쳐내는 일이 우선 행해져야 한다. 서사적 전개의 스펙타클과 긴장감보다 감독이 영화 내에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상황 자체에 의미가 있다. 크로넨버그의 장편 데뷔작 <파편들>이 그렇다.

  영화는 기생충에 물린 사람들이 난교 파티를 벌이고 한쪽에선 미성년자를 살해하고 또 한쪽에선 기생충이 다른 사람물어뜯는다. 기생충을 만든 의사는 자기 제자를 빌딩 안에서 죽이고 그녀의 뱃속에 염산을 뿌리고 자살한다. 기생충은 알게모르게 번식하는지 자꾸 어딘가에서 나타나 사람들을 물어버린다. 물린 사람은 자유로운 사랑을 즐기는 자연인이 된다. 나쁘게 말하면 짐승이 돼서 아무나 붙잡고 섹스를 한다.  


이 모든 행위가 일어나는 곳은 빌딩 안이다. 이곳은 인물들이 생사를 겨뤄야 하는 단두대다. 오프닝에서 집을 보러 빌딩에 들어간 부부는 자동차를 끌고 온다. 이때 자동차는 <파편들>에서 사람들이 야외를 돌아다닐 때 쓰는 유일한 수단이다. 건물 밖에서는 인물이 걷는 쇼트가 없다. 도보가 허락되는 곳은 건물 복도와 집 안에서다. 크로넨버그는 인물을 밖으로 불러낼 때마다 차에 태운다. 건물 안이나 그 근처가 아니면 <파편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리가 멀쩡해도 쓸 수 없다. 그들이 걸음을 뗄 때는 집 안에서나 건물 복도에 있을 때다.

  건물 복도에서는 운전을 못하지만 바깥에서는 걷는 사람이 있고 다종다양한 교통수단이 굴러다닌다. 근데 크로넨버그는 오직 둥그런 바퀴가 달린 물체만이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세계관을 짓는다. 카메라는 자동차에 달려 있을 때만 건물 바깥을 찍는다. 사실상 이렇게 되면 인물들은 갇힌 셈이다. 건물 안에서나 자동차 안에서나 그들은 이동의 자유를 잃는다. 부동하는 건물에 칩거하거나 자동차에 의탁해야만 영화 속 인간들은 걸을 수 있다. 인물들은 이런 현실에 안주해간다.

  야외를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권리. 그것은 문명 사회가 편리를 추구함으로써 만들어낸 도형 속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는 권리다. 좋은 경관과 경제적 허영심을 주는 네모난 고급 빌딩, 둥근 바퀴로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수단으로서 괜찮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 이런 발명에도 성이 안 차 영화 속 의사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인체기능을 만들겠다며 기생충을 창조한다. 그것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인간 안에 내재된 뾰족한 마음. 그것모양삼각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이 발명해낸 것들은 다른 욕망으로 인해 붕괴될 것이라고 크로넨버그는 말한다. 누구는 온 세상이 네모라고 하지만 그것의 근원은 날선 삼각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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