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썬>.2023 - HAPPY HOUR
그녀의 회고를 도와주는 것은 튀르키예에 가서 찍은 비디오다. 촬영 당시 소피는 너무 어렸다. 그녀는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카메라를 내려놔야 볼 수 있는 캘럼의 뒷모습과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한다. 사랑은 그 사람의 앞모습을 찍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지지만 그 사랑에 눈이 멀어 뒷모습은 배제되고 만다. 이것을 어린 소피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른이었던 캘럼은 여행 중간마다 신경이 쓰였을 테다. 이것이 딸과의 마지막 여행임을 알고 있었을 캘럼은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 즐거운 표정을 소피에게 보여준다. 카메라에 기록된 아빠의 얼굴은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하다. 촬영 당시 한참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소피는 어른이 되어서 안다. 앞모습 밖에 찍을 수 없는 카메라라는 기계의 명확한 한계를 알았던 캘럼은 철저히 그의 어두운 모습을 감추었다.
회고가 꼭 비디오 같은 물성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어떤 경험은 카메라가 아닌 그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롭게 써진다. 카메라를 끄라고 캘럼이 말한 그날, 소피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그만둔 캘럼을 기억하고 있다(영화가 끝날 때까지 캘럼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샬롯 웰스 감독은 밝히지 않는다). 영상이 아닌 기억으로 저장돼 있던 그날의 일부. 만약 소피가 여행의 기억을 철저히 비디오에 의존했다면 캘럼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뚜렷한 이미지를 가진 비디오보다 불명확한 이미지로 재생되는 그날의 기억. 감독 스스로 자전적 영화라고 밝힌 이 영화에는 줄곧 거울 이미지와 물의 이미지가 나온다. 거기에 비치는 캘럼과 소피. 당시에는 보지 못한 아빠의 뒷모습이 여행지 곳곳에 묻어 있었다는 후회의 이미지다. 샬롯 웰스는 늦은 깨달음으로 빚어낸 이 이미지들을 아버지에게 바치듯 영화 곳곳에 집어넣는다.
미성숙했고 이제 막 성(性)에 눈을 뜬 소피는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일(키스, 성적인 농담)과 어른이 돼서야 마주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이 혼재된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애프터썬>의 소피는 성장과 비(非)성장을 동시에 겪는다. 영화 속에서 이런 인물은 흔치 않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흔한 일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깨달으면서 성장함과 동시에 정작 깨닫지 못한 무수한 사실들에는 무지하다. 성장하는 순간만이 중요하고 이런 태도는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하다. 성장영화는 많고 주인공은 성장하지만 그럼으로써 아직 덜 성장했다는 사실에는 한없이 무지하다. 소피는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다시 성장한다.
소피는 캘럼을 향해 자주 등을 돌린다. 진흙을 발라주거나 썬크림을 발라주거나 할 때 소피는 의심없이 캘럼에게 몸을 맡긴다. 이는 캘럼이라는 떠난 가족을 향한 믿음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반면 캘럼은 소피를 향해 영화 중반부까지 등을 돌린 적이 없다. 그의 등이 보일 때면 소피는 잠을 자거나 그의 곁에 없다. 한창 성장기에 접어든 소피에게는 감히 보여줄 수 없는 뒷모습. 후반부에 여행을 끝내고 공항에 들어와서 그가 찍은 비디오를 보면 소피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까지도 그는 앞모습만 보인다. 소피가 등을 돌려 자신의 길을 갈 때까지.
결말에 이르러 소피의 상상 속에서 캘럼은 뒤를 돌아 그녀를 떠난다. 그제야 소피는 아빠의 뒷모습을 본다. 이제는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는 아빠라는 존재를 생각하면서 조금은 그에 대한 무지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아빠의 뒷모습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등을 보인 캘럼은 문 밖으로 나간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직 그가 나간 곳에 문은 남아있다. 소피는 언제라도 저 문을 열고 캘럼을 찾으러 떠날 것이다. 그를 잊어버릴 때마다, 그를 기억하고 싶을 때마다, 그를 담아둔 영상을 꺼내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해 계속 생각하기 위해 스스로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