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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Aug 07. 2024

폴란드 여행기

프롤로그

왜 하필 폴란드였나. 2주의 공백기를 오직 폴란드로 채우겠다는 일편단심으로 항공비에 숙소비까지 냉큼 지불했다.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그곳에 가는 이유를 캐물었지만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을 향한 이십 대 초반의 모험심일까,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보며 저도 모르게 쌓여간 폴란드에 대한 로망일 수도 있겠다. 촬영지는 스위스였고 영화적 주제는 프랑스와 연결되어 있지만 태생이 폴란드인인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걸작 <세 가지 색 : 레드>에 대한 무한한 애정도 포함시킬 수 있다. 선의를 행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담긴 우아한 영상을 보았을 때 나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을 하나의 개인이 아닌 폴란드인의 정신을 대변하는 위인으로 섬겼다. 한 사람을 향한 동경이 타국을 향한 로망으로 부풀어오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케이팝을 좋아해 아이돌을 보러 한국에 온 팬, 책에서 본 프랑스 예술가의 작품을 구경하러 파리에 온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은 그 사람의 뒷배경까지 아름답게 해석하려는 과오를 저지르게 한다. 



인천 - 프랑크푸르트 / 프랑크푸르트 - 포즈난(폴란드)



아름답고 화려할 뿐인 세계 안에서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은 평탄함의 연속이며 금방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이 찾아오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이미 만개해버린 웃음꽃은 져버릴 줄 모른다. 


 미지의 나라 폴란드를 상상하는 동안 한 순간도 슬펐던 적이 없다. 상상 속에서 비행기를 타고 폴란드에 도착한 나는 오랜 소지품이었던 불안과 걱정을 그곳에 두고 내린다. 폴란드의 길을 걸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끊김 없이 웃는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곳이다. 이 말은 후회도 없고 걱정도 없다는 말이다.  



왜 가본 적 없는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게만 그려지는가.  



그곳은 직접 가 봤을 때도 여전히 아름다울까. 폴란드가 마치 상상 안에서 떠오른 부산물인 것처럼 머릿 속에 그린 폴란드라는 땅의 찬란함이 그곳에서도 여전했으면 하는 바보 같은 걱정. 걱정과 함께 찾아오는 불안. 직접 목격한 폴란드가 나의 상상과는 정반대일까 봐. 그런 허탈함이 찾아오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질까 봐.  


아름답게 그려놓은 폴란드를 아름답게 즐기는 방법은 철저한 계획에 따른 움직임이다. 상상괴 현실은 동일할 수 없기에 계획을 세우는 일은 불가피하다. 여행 계획 안에는 여행자가 그려놓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부합하기 위한 욕망이 담겼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으면서 좋은 상태로만 그곳에 존재하고 싶다. 상상을 구체화시켜 현실을 걱정 없이 즐기려는 마음. 계획을 부단히 세우는 일이란 나의 상상이 현실 앞에 굴복하는 일이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굳건하기에. 


계획대로 되든 안 되든, 걱정은 금물이다. 


이번 여행의 또다른 목적은 힘을 빼기 위함이다. 몸에 어떤 힘도 안 들이고 나만의 시간을 유유자적하게 보내려고. 나에게서 땀 한 방울이라도 더 쥐어짜내려는 거지 같은 현실을 떠나기 위함이다. 이곳에서 힘을 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다그침이다. 체력이 다 소진된 사람한테 힘을 내라며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앉아있으면 눈치 주는 곳에서 나는 다음 날에 쓸 힘까지 당겨와야 했다. 나를 향한 다그침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한량처럼 돌아다니면서 가만히 공원 벤치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 싶다. 어쩌면 그런 안락한 장소와 시간을 가진 나라가 폴란드 같아서, 폴란드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상상에 불과하지만, 다른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도 상관 없다. 맑은 하늘을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1시간만이 내게 주어진다면, 다른 모든 건 빗나가도 좋다. 만약 그런 순간이 폴란드에서 주어진다면, 더 이상 폴란드는 내 상상 속에서만 아름다운 공간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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