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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Aug 30. 2024

폴란드 여행기

기다리는 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7월 23일


11 : 00 PM


가진 건 여유로움 밖에 없었다. 폴란드에 도착하면 밤 11시고, 숙소 체크인은 오후 세 시 부터 가능했다. 집 없는 신세로 16시간을 떠돌아야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해 폴란드의 도시, 포즈난에 도착했다. 하나밖에 없는 짐을 어깨에 멨다. 공항엔 늦은 시간에 도착해 말 한 마디 없이 짐을 끌고 나가는 나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직원 몇 명이 개인적인 업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유심을 샀다. 어떻게 갈아끼우는지 몰라 편의점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배우 폴 다노를 닮은 남자 직원이 졸린 얼굴로 유심 칩을 끼워주었다.

 

공항을 나오니 시원한 공기가 피부를 때렸다. 주변에는 캐리어를 택시 트렁크에 넣는 여행자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택시기사들이 있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30분이 지나서 왔다. 나 혼자 버스에 타니 버스기사가 나를 보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나도 웃으면서 폴란드어로 인사하고 버스 표를 펀치 기계에 넣었다.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표를 토해냈다. 표에 작은 구멍이 나면 안심하고 자리에 앉는다.


내가 내릴 곳이 종점이었다. 내리기 위한 마음의 준비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자리에 앉으니 한숨 자고 싶었지만 단잠은 이따 들어갈 숙소에서 만끽하기 위해 참아야 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폴란드의 밤거리. 누추하게 생긴 나무와 무성한 풀이 밤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 전부였고 이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출 때면 한 두명 정도의 현지인만이 버스에 올라탔다. 헤드셋을 낀 젊은 여자, 가죽자켓을 입은 중년 여자, 술을 마신 게 분명한 할아버지 등. 폴란드는 많은 승객들이 버스 뒷문으로만 출입을 한다.  앞문도 열고 닫히고 제 기능을 하지만 그들은 더 넓은 뒷문을 애용한다. 밤 11시의 한국에 비하면 텅 비어있는 버스에 마음이 편했다. 무거운 가방을 빈 옆자리에 놓았다.


분명히 술을 먹은 할아버지와 함께 중앙역에서 내렸다.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커다란 도로 위에는 택시기사들이 차에 기대어 담배를 폈다. 이 도시를 주름잡는 갱단처럼 몸집이 컸고 위아래 전체가 검은 옷으로 덮여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젊은 사람 몇 명이 허름한 건물 앞에 앉아 술주정을 부렸다. 꼬여버린 혀로 더듬거리면서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저들끼리 낄낄 웃었다. 해코지 당할까 무서워 저들 근처로는 얼씬도 안 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 기차표를 구했다. 영어로 언어를 바꾼 다음 브로츠와프로 가는 표를 눌렀는데 49즈워티였다. 16,000원.


아무리 찾아봐도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시간대가 새벽 5시 반이었다. 넋놓고 5시간 반을 기차역에서 보내야 했다. 처음 닿은 폴란드 땅에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은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되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기차역을 돌아다니며 밤바람을 맞으니 금세 시간이 갔다.


폴란드인은 니코틴을 사랑한다. 내다버린 담배꽁초가 철도에 깔린 돌멩이 사이사이에 꽂혀있다. 어떤 남자는 기차 출입문 앞에서 연초를 태웠다. 기다리면서 전자담배를 피우던 어떤 여자는 자신이 탈 기차가 철로에 서는 순간까지 연기를 뿜었다. 당장에 한국이었으면 따귀를 맞겠지만 폴란드에서는 그 누구도 흡연자에게 눈총을 쏘지 않았다. 브로츠와프 대성당의 내부보다도 이런 작은 순간들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쌀쌀해지기 시작해서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불을 켜놓았지만 문이 잠구어진 상태였다. 배를 채우고 목도 좀 축이려 했는데 둘 다 못하게 생겼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4 즈워티를 내야 했다. 카드를 찍고 들어갔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여자는 단순 청소부가 아니라 화장실 전체를 지키는 경비원처럼 들어가고 나가는 이용자들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이곳에선 목을 축이는 일을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자판기에서 물을 사 마셨고 화장실을 두 번 더 들락날락했다. 덕분에 12즈워티가 날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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