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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Mar 31. 2022

되어보지 않으면 될 리 없는 이것

신기한 붉은 신발

“비켜, 비키라고!”


인도 어느 마을에 신두(Shindhu)라는 소년이 살았다. 그는 성격이 급한 탓에 길을 갈 때도 몹시 빠르게 걸어 다녔고, 느긋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나, 노인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듯 답답해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대신 그를 업어 키운 작은 어머니는


“얘야, 나이가 들어 천천히 걸어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을 답답해하면 안 된단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늙기 마련이니 말이야.”


   하고 타일렀지만, 혈기왕성한 신두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어느 날, 신두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신두는 당장이라도 앞에 보이는 노인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었지만, 작은어머니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는 억지로 참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불편한지, 노인은 갑자기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신두는 급하기도 했거니와,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를 가눌 길이 없어 노인의 등을 힘껏 밀어버렸다. 깜짝 놀랄 새도 없이 노인은 길거리 한 복판에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는 눈을 크게 부라리며,


“이보게, 자네는 대체 왜 잘 걸어가던 나를 밀친 것인가?”


   하고 말했다. 신두는 그 말을 듣고 사과하기는커녕, 목소리를 높이며,


“이봐, 영감. 다 늙은 주제에 왜 길을 막고 그러는 거요?”


   하고 대꾸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노인은 허리를 부여잡고는 간신히 일어났다. 그러면서 죗값을 반드시 치를 것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한편, 신두는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고서는 바람 부는 강가 옆 풀밭에 누워 쉬는 중이었다.


   물건을 잔뜩 들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탓에 피곤했는지,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에 빠진 신두를 발견한 건 아까 그 노인이었다. 그는 자기 주머니에서 붉은 신발을 꺼내더니, 신두가 잠에 든 것을 연거푸 확인한 뒤 자기 손에 있는 신발을 신두의 발에 갈아 신겼다.


“어? 내가 신발을 샀던가?”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깬 신두는 자기 발에 새 신발이 신겨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신발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유난히 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신발 때문인 것 같아 벗어보려 했지만, 발과 하나라도 된 양 신발은 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이제는 신발이 줄어들기라도 한 듯, 꽉 끼는 게 아니겠는가? 결국 신두는 길가 옆에 누군가가 버려놓은 낡아빠진 지팡이를 주워 들고는 그가 그렇게 답답해하던 거북이걸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 저거 신두 아니야?”

“그러게, 느리게 걷는 사람들을 그렇게 답답해하더니, 저게 무슨 꼴이람?”


   사람들은 신두의 모습을 보고는 구경거리라도 본 듯 몰려들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어기적 어기적 발걸음을 떼는 신두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시장에서 넘어진 바로 그 노인이었다.


“허허, 자네도 나와 같은 늙은이가 된 겐가?”


   자기에게 말을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신두는 부끄러워서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무려 7일이 다 지나는 동안 붉은 신발은 신두의 발에 착 달라붙어 시종일관 그를 괴롭혔다.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면 아플수록, 신두는 지난날 걸음이 느린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봤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웠다. 이제는 노인들은 물론, 걸음이 느린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작은어머니에게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신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신두는 신발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세배는 더 기뻐했다. 이후로부터 그는 노인은 물론 걸음이 느린 사람을 정성스럽게 잘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 고대 인도 설화집 카타사리트사가라 중 ‘신기한 붉은 신발’ -



‘선물을 보냈습니다. 지금 확인해 보세요!’


   3년 정도 된 일인 것 같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는데, 카카오톡 알림이 왔다. 생일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누가 선물을 보냈다는 메시지에 보낸 사람부터 확인했다. 중학교 동창 S였다.


‘그땐 내가 정말 미안했다. 안경이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어.’


   나는 어려서부터 시력이 몹시 나빴다. 안경이 없으면 거의 생활이 불가능하다. 모든 친구가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안경을 쓴 나를 놀리는 아이들이 한두 명쯤 있었다. 눈이 작아 보인다고 놀리는 건 귀여운 수준이었고, 쉬는 시간 잠시 안경을 벗어놓고 잠들었다가 다시 쓰려고 책상을 더듬거리면 없었던 적도 있었다.


   S는 그런 친구들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그가 한 장난은 다른 친구들이 한 것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었던 것 같다. 그런데, S는 그때 나에게 했던 장난을 10년이 넘은 그때까지 기억하고, 사과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온 거였다.


“아, 사실은 말이지...”


   철없던 때 장난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라도 있냐는 말에 S는 얼마 전 갑자기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안경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났다고, 물론 전에도 사과했지만, 사실은 두꺼운 안경이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다면서 놀려서 정말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건넸다.


   젊고 걸음이 빨랐던 신두가 느리게 걷는 노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처럼, 시력이 좋았던 S는 초고도 근시인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 S의 안경과 신두의 붉은 신발은 모습만 다르지 사실 같은 것이었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였으며 의사였던 Alfred Adier의 말처럼, 누구나 상대편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을 느껴보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기억하라. 상대방이 되어보지 않은 상태라면, 목이 빠져라 고개를 흔든다 한들 그건 진짜 공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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