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준 요술 보자기
“어흐, 어째 날이 갈수록 추워지네!”
어느 시골 마을에 아침 저녁마다 앞산을 향해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는 총각이 살았다. 집에 화장실이 없었던 건 아닌데 날씨가 너무 추워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거다.
“저... 저놈이? 오늘도 날 보면서 오줌을 갈기는 군, 안되겠다! 그 녀석을 불러야겠다.”
그런데, 문제는 앞산 산신령이 이런 총각의 모습을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거였다. 그는 오늘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앞산을 향해 볼일을 보는 저 몹쓸 인간을 혼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타난 건 바로,
“산신령님,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앞산에 사는 호랑이였다. 산신령은 그새 볼일을 다 보고 돌아서는 총각을 향해 분노 어린 삿대질을 하며 ‘저기 저 놈에게 산신령 무서운 줄을 알게 해 주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산신령이나 되는 분이 고작 오줌 갈겼다는 이유로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붉으락푸르락 변해버린 산신령의 얼굴을 보아하니, 호랑이는 자칫하면 자신이 화풀이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 지금 당장은 못 가겠다’ 같은 핑계조차 대지 못하고 산 아래 총각이 사는 시골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톱, 아니, 호랑이 발톱 만하게 보였던 집은 얼추 내려오니 이제는 고래 등 마냥 크게 보인다. ‘이 몸을 여기까지 내려오게 하다니, 어떻게 혼쭐을 내 줄까?’ 생각하는 호랑이의 귀에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들렸다.
“아휴, 정말 추워 죽겠네. 이렇게 추운 날 나는 집이라도 있어서 괜찮지만, 저기 저 산에 사는 호랑이님은 얼마나 추우실까?”
물론 총각은 지척에 호랑이가 있는 줄 모르고 말했겠지만, 그 한 마디는 짜증 가득한 호랑이의 이마를 펴지게 만들고도 남았다. 자기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감동한 호랑이는 슬쩍 몸을 돌려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야, 이놈아.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산신령은 그냥 돌아온 호랑이를 보고 잔뜩 화를 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산신령은 총각이 생각보다 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살림살이가 마뜩잖으니, 도와주자’는 호랑이의 말에 품 안에 감추고 있던 요술 보자기를 내주었다.
“여기쯤 두고 가면 되겠지?”
호랑이는 보자기를 냉큼 입에 물고 다시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혹여나 다른 사람이 주어갈까 하는 노파심에 총각 네 집 앞마당에 보자기를 슬쩍 떨어뜨려 놓고서는 수풀 사이에 숨어 지켜보았다.
잠시 후 아침 일찍 나무를 하러 총각이 지게를 지고 마당을 나선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보자기를 본 총각은 찬바람을 막아 볼 심산인지, 그걸 이렇게 저렇게 접더니 머리에 두른다. 그런데,
“아휴, 그러게 말 야. 불쌍해 죽겠네.”
“인간이 우리말을 알아듣는다면, 가서 도와주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 야.”
보자기를 머리에 둘러쓴 그 순간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재잘대는 새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또렷이 들리는 게 아닌가?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넛마을에 이 씨 성을 가진 부잣집 외동딸이 병에 걸려 앓고 있는데, 그게 사실은 그 집에 몰래 숨어 살고 있는 지네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총각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무 할 생각일랑 접어두고, 건넛마을 부잣집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레 찾아온 남자가 ‘따님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니 처음엔 모두 의아해 했다. 하지만, 딸의 병을 고쳐준다는 말에 이 부자는 흔쾌히 총각이 요구하는 대로 가마솥에 기름을 끓이게 시킨 뒤, 사다리와 쇠 젓가락을 내어주었다.
잠시 후,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 총각이 커다란 지네를 젓가락으로 잡아 내려오자, 사람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주목했다. 지네가 기름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운 얼굴을 한 이 부자의 외동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이 총각이 큰일을 했다’고 연신 칭찬했고, 이 부자는 총각을 사위로 맞이했다. 결혼한 이후에도 이 남자는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는 신기한 보자기를 가지고 이 동네 저 동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 한국 전래 동화 중 ‘호랑이가 준 요술 보자기’ -
“엥, I가 아니에요?”
“네, 저 완전 E인데요.”
어느 날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내 MBTI를 물었다. I(내향형)일 것 같다고 하기에, 완전 E(외향형)이라고 말했더니, 크게 놀라는 눈치다. 편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와는 달리, 직장에서는 주로 하고 싶은 말보다는, 해야 할 말만 하는 편이기 때문에 동료들은 내가 내향적인 사람인 줄로 생각한 거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상황과 환경은 똑같은 사람을 다르게 행동하게끔 만든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나 역시 그렇다. 일을 할 때만큼은 조금이라도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평소 개인적인 일을 할 때 미루는 모습과는 정 반대다.
우리는 타인을 마주 할 때 이러한 사실을 생각보다 자주 간과한다. 내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저 사람의 모습이 그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산신령은 총각이 아주 못된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호랑이에게 ‘혼쭐을 내라’고 말했던 거다.
하지만, 호랑이는 산신령이 보지 못한 남을 생각하는 따뜻한 총각의 심성을 보았고, 산신령은 이에 대해 더 이상 자신이 본 것만을 옳다고 우기는 대신, 호랑이에게 요술 보자기를 내어주어 총각이 다른 사람을 도울 뿐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람은 오랜 시간과 다양한 환경 안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계속해서 변화한다. 사람이 입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내가 보는 옆 사람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편견이다.
영국의 소설가 Jane Austen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이 말하듯,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한 번 쯤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옆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부정적으로 판단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당신이 발견하지 못한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돌다리 뿐 아니라, 사람도 꼼꼼히 살피고, 두드려 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