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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Jul 14. 2022

따라가지 마라, 따라오게 하라

꼬리

“아잇, 조금만 더! 조금만!”


강아지 한 마리가 제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빙글빙글 돈다. 그 모습을 아까부터 가만히 지켜보던 어미 개가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강아지는 어지럽지도 않은지, 멈추지도 않은 채 엄마의 물음에 대꾸한다.


“엄마, 보면 몰라요? 저는 지금 꼬리를 좇고 있잖아요.”(좇다 : 동사,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왜 네 꼬리를 좇느냐’는 엄마의 말에 강아지는 멈춰 섰다. 한참을 돌던 탓에 잠시 휘청하더니, 뭐가 그리 좋은지 꼬리를 연신 흔들며 엄마에게 대답한다.


“엄마, 잘 들어요. 이건 내가 어젯밤에 깨달은 건데, 뒷집 흰둥이에게도, 앞집 누렁이에게도 안 알려준 거예요.”


“그게 뭔데?”


   엄마 개는 강아지의 말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아지는 더욱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말인즉, 개에게 가장 좋은 건 행복인데, 그 행복이 꼬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행여나 다른 개가 이 놀라운 사실을 엿듣기라도 할까 봐 강아지는 숨을 죽이며 자기가 꼬리를 열심히 좇고 있는 건 개로서 느낄 수 있는 참된 행복을 잡기 위함이라고 엄마에게 속삭였다. 엄마 개는 아들의 말을 다 듣고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가야, 네 말이 맞아. 행복은 분명 네 꼬리에 있단다. 하지만, 꼬리는 네가 해야 할 일에 열중할 때, 자연스럽게 너를 따라오게 될 거란다. 그러니, 우리 함께 꽃향기를 맡으러 저기 앞산으로 가지 않으련?”


- 수피 우화 중, ‘꼬리’ -


  

“뭘 이런 걸 보러 가자고 그러니...”


   막 스무 살이 되던 해 설 명절이었다. 동생과 나는 미리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이제 집에 가자’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우리 네 사람은 카페로 향했다. 바닐라 라테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 모카 두 잔을 시켜놓고 짙은 갈색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았다.


   어머니는 소녀 같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줄거리에 대해 감상을 한참 동안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괜히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던 아버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당신도 한 마디 하라’는 신호였겠지.


   아버지는 영화 감상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평생 찾던 행복이 멀리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이다. 맞은편에 앉은 동생이 한 마디 거든다. ‘그건 엄마 아빠가 이제껏 성실히 최선을 다하셨기 때문이라’고.


   꼬리를 좇아 열심히 돌던 강아지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행복은 중요하다. 하지만, 꼬리만 쳐다보고 제자리만 도는 개가 꼬리를 잡을 수 없듯, 행복만 의식하며 살다 보면, 도무지 그건 잡히지 않고, 불행만 잔뜩 쥘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개의 말에 정답이 있다. 해야 할 일을 할 때 강아지 뒤를 따라오는 꼬리처럼, 행복도 마찬가지란 거다. 혹시 나 자신이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던 강아지처럼 느껴지거든 인도 철학자 Osho Rajneesh의 말을 기억하라.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할 때
행복은 자연히 따라온다.
무슨 일이든 지금 하는 일에 몰두하라.
그것이 위대한 일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말고, 방을 청소할 때는
완전히 청소에 몰두하고,
요리할 때는 거기에만 몰두하라.


따라가지 마라, 따라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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