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인간 Jul 28. 2022

댕댕한 인문학

동물의 탈을 쓰고 전하는 지금, 여기의 인문학

“어, 뭐야. 진짜 이랬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게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우연히 다시 들른 모교 운동장은 코흘리개 초등학생 시절 느꼈던 것만큼 거대하지 않았다. 반대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보니 어렸을 때보다 더 크게 느껴진 게 있다. 우화였다.

   신화와 영웅 이야기를 통해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했던 ‘영웅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쓴 뒤, 지체 없이 바로 우화를 선택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렸을 적, 우화는 단순히 동물들이 말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고래 등만큼 넓었던 운동장이 과장 조금 보태서 코딱지만 하게 보이는 어른이 되자, 우화를 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은 달라졌다. 거기 나오는 동물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거다.

“동물의 탈을 쓰고 전하는 ‘지금’, ‘여기’의 인문학”

   작가로 초대받아 목요일마다 정기 연재를 했던 ‘북이오 프리즘’의 편집자님이 달아놓은 ‘댕댕한 인문학’의 소개다. 나는 이게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져다가 풀어놓은 우화들을 이처럼 잘 표현하는 문장이 또 있을까?

   본래 ‘댕댕한 인문학’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 총 30개로 구성했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솝우화나,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화를 읽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라퐁텐 우화로만 쓰려고 했다.

   하지만, ‘영웅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길가메시는 물론, 헤라클레스나, 오디세우스를 소개하는 걸 넘어 우리나라의 홍길동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댕댕한 인문학’에서도 우리나라의 가전체 소설을 비롯한 우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총 60개의 우화를 다루게 되었다.

   이 많은 이야기 중에는 대중에게 익숙한 것도, 낯선 것도 있다. 잘 아는 우화든지, 그렇지 못한 우화든지, 이 모든 글을 통해 ‘인간다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그래서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인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단히 썼다.

   ‘인문학’하면 흔히 고전을 생각한다. 고리타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철학이나, 신화를 배워야만 인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건 아니다. 우화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라, 동물의 탈을 쓴 이 고전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어쩌면 당신은 철학과 신화보다  현실적이고 노골적으로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화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들을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제 우화는 단순히 동물이 말하는 이야기를 넘어 동물의 탈을 쓰고 전하는 지금 여기의 인문학, 당신의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댕댕한 인문학  것이다.

   62개의 글을 쓰는 동안 함께 해준 고마운 이름들을 떠올리며 마무리를 하고 싶다. 나의 글 스승, 글쓰기 공동체 ‘쓰고 뱉다’의 김 싸부 김정주 작가에게 가장 먼저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을 계속 쓰는 일은 물론, ‘댕댕한 인문학’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가 나와 내게 부어준 거침없는 호의와 사랑 때문임을 안다.

   다음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댕댕한 인문학’을 읽을 수 있도록 초대해주시고, 연재 기회를 마련해주신 북이오 프리즘 편집부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연재의 기회가 주어지고, 내 글을 선보일 플랫폼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주의 확장이다. 나의 우주를 넓혀주신 북이오 프리즘 편집부와 담당 에디터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구독과 좋아요, 댓글과 후원까지. 여러 모양으로 나와 내 글을 사랑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과, 나의 동지들(그래, 당신들.) 그리고 함께 글을 쓰는 쓰고 뱉다의 모든 쓰뱉러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계속해서 쓰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건, 내가 글을 쏟아 내기 때문이 아니라, 내 글을 읽고, 반응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계속해서 쓸 수 있도록, 반응해 주시고, 사랑해주시길 머리 숙여 부탁드린다.

   끝으로, 나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뿐인 나의 여동생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들이, 오빠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지해주었기에 ‘댕댕한 인문학’을 끝까지 쓸 수 있었다.

   누군가는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의 입을 빌려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다움을 말하는 일이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게 무엇이든 참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또다시 그것을 가지고 쓰고야 말겠다. 우리들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욱 인간답기를 간절히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해 보지 않으면 해 보지 못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