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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엄마의 물건 1

by 신정애

차를 타고 막 떠나려는데 엄마가

“야야, 땅콩 좀 가져가라”

“됐다. 아이따나 캐지도 않았잖아.”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엄마는 바쁘게 밭에 가서 아직 노란 꽃이 달린 엄마 얼굴을 다 가리는 엄청 큰 땅콩 덤불을 안고 왔다. 배추며 나물이며 반찬이 가득 실려 있는데도, 이렇게 가면 또 언제 오나 싶어 아직 때가 안 된 땅콩을 그것도 제일 큰 포기를 뽑아온 거다. 축축한 흙이 묻은 땅콩들이 뿌리마다 대롱대롱 가득 매달려 있다. 엄마는 바쁜 대로 툭툭 흙을 털어서 포기째 차 뒤쪽에 실었다. 차 가득 초록 덤불로 꽃차가 되었다.

“안 줘도 되는데 뭐할라꼬.” 괜히 핀잔을 주고

"엄마 간데이- " 웃으며 차는 떠나지만 점점 멀어지는 엄마를 거울로 끝까지 붙잡아 본다.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는 차 안에는 흔들거리는 땅콩 덤불과 그저 신나서 덜썩이며 노래하는 딸과 쓴 땅콩 뿌리와 줄기와 잎의 냄새, 흙냄새, 엄마 냄새가 가득하다.


집에 와서 뿌리에 매달린 신기하고 재미있는 땅콩을 땄다. 잎과 줄기가 거실 하나 가득, 너풀 너풀 너무 무성해서, 땅콩만 보았던 우리는 그 잎과 줄기와 아직 생글대는 노란 땅콩 꽃에 홀딱 반했다. 땅콩이 한 바가지나 나왔다.

땅콩이 다 그게 그것 같지만 다 다르게 생겼다. 살짝 굴곡 지는 허리로 2개의 알이 껍질까지 꽉찬 단단하게 여문 완벽한 땅콩이 많지만 생기다 만 듯 찌그러진 것도 있고, 알 하나만 살찌게 키워 엄지 같은 것도 있고 아직 덜 영글어 주름도 없는 올챙이 같은 물기 가득한 아기 땅콩도 있다. 땅콩 따기보다 이상한 모양을 찾는 게 재미있던 우리는 서로 이거 봐라 이거 봐라 하며 땅콩을 따다가 눈이 번쩍 떠지는 정말 귀여운 땅콩을 만났다.

살짝 뒤를 돌아보는 얼굴에 주둥이가 뾰족나와 오리랑 똑 닮은 것이다. 너무 귀여워서 씻어 딸아이 책상에 두고 땅콩이 아닌 오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다른 땅콩은 삶아서 먹었다. 다 큰 것은 고소하고 아직 덜 여문 것은 달았다.

이렇게 오리 땅콩은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쩌면 엄마는 땅콩 덤불을 실어 줄 때 벌써 딸이 딸과 다정하게 앉아 땅콩을 따보고 이렇게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고 맛있게 먹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어릴 때 엄마가 늘 그랬듯.


엄마가 돌아가신 지도 10년, 땅콩오리도 스물 여섯살이나 되었다.

여전히 책장 턱에 앉아서 달그락달그락 마른 땅콩 알을 품고, 잘 가라 손 흔들며 보내던 땅콩 덤불로 다 가려졌던 키 작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해준다. 내가 여전히 철없던 어린 딸이 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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