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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Nov 22. 2021

사는건, 언제나 드럽게 힘들지만

영화 "레옹"




Sting,  'Shape of My Heart'.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이래요?



                      


                         언제나 힘들지.




  

  가난했던 풋내기 시절.

  남자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여자의 아버지는 볼품없던 이 남자와의 교제를 절대 허락하지 않았죠.  극심한 갈등 끝에, 여자는 결국 아버지에게 목숨을 잃었어요.  분노로 눈이 뒤집힌 남자는 그 아버지를 총으로 살해했습니다.  자신의 일부를 그렇게 고향땅 이탈리아에 남겨둔 채 19살의 남자는 낯선 미국의 뒷골목으로 숨어 들어와 이름 없는 이방인이 되었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피'를 손에 묻히고 살아왔습니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잡초처럼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아니 맺지 않은 채 어둠 속 유령과 같은 삶을 자처해 왔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렴 어떤가요, 지금껏 '운 좋게' 살아남아 왔지만 어느 날 총에 맞아 똑같이 싸늘한 시체가 된들 자신의 죽음에 슬퍼할 이는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까.  오늘도 어제와 같을 테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르지 않을 텐데.


  꼬마의 이름은 마틸다.

  이제 갓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입니다.  남자는 그 아이를 눈여겨본 적이 없었죠.  아이가 애써 등 뒤로 감추는 담배가 오히려 더 눈에 지만 상관할 바 아니에요.  힐끔거리는 그 눈길을 외면하며 지나치는 순간, 뭐라고 말을 걸어오는 아이의 눈언저리에 선명한 멍 자국이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두 번째 마주쳤을 때도 그 여자아이는 두드려 맞은 건지 연신 코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죽어 마땅한 많은 인간들을 '처리'해오면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에 비하면 그 아이의 멍든 얼굴쯤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피투성이의 얼굴로,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물어오는 꼬마 아이는 흔치 않지만 그 삶이란 놈은, 따지자면, 힘없는 아이라고 결국 다르진 않은 거니까.  말없이 건네준 하얀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낸 그 여자아이는, 난생처음 자신에게 친절을 전한 이 아저씨에게 흰 우유를 사다 주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어요.  


  자, 이 꼬마 여자아이의 목숨은 이제 이 남자에게 달렸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이 낯선 거리에 발을 들였던 순간부터 남자는 누구의 삶도 자신의 세계에 들이지 않았죠.  한데 한두 마디 말을 섞었을 뿐인 이 아이가, 지금 남자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고 있어요.  어차피 세상은 이유 없는 불행과 슬픔들을 잔뜩 집어삼키고 돌아가는 것이기도 한데, 이 아이 하나의 죽음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을까요.  그렇게 자신의 어둠 속으로 다시 숨어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그러면 이 여자 아이는 어쨌든 확실히 죽을 겁니다.  그냥 뒤돌아 문을 닫고 돌아서면, 그뿐이었어요.






                        

문 열어 주세요,  아저씨




이 녀석은 나랑 똑같아,  뿌리가 없거든









  미국에서 촬영되어 1995년에 개봉되었던 프랑스 영화 <레옹>은 이듬해 1996년에 우리나라에서도 150만 명의 관객이 들었던 영화입니다.  범죄 액션 장르임에도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색감, 스타일, 분위기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묘하게 자극했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죠.  특히 엔딩과 동시에 흘러나왔던 Sting'Shape of My Heart'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불후의 명곡이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기분이 축 가라앉을 때 더 생각나는 곡이에요.

1998년엔 26분가량의 추가 장면이 포함된 감독판이 재개봉되었습니다.  또 2013년도엔 획기적으로 화질이 개선된 디지털 리마스터링 감독판이 연이어 재개봉되기도 했어요.  이 감독판에서 추가된 26분여 가량의 삭제씬들은 살인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마틸다를 데리고 레옹이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들과,  둘의 좀 더 세밀한 감정 묘사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레옹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 엔딩씬에서 마틸다의 이후 행적에 관한 추가적인 묘사들도 포함되었죠.  빵빵 터지는 전형적 액션 영화로서의 쾌감을 강조하기보단 먹먹한 멜로드라마로서의 서정성을 더욱 부각했다고 평가받은 감독판은, 최초 극장 버전과는 달리 또 다른 측면에서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수순처럼, 다시 5년이 지난 2018년에 이 <레옹: 감독판>의 재개봉 소식이 들려왔지만 한데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달랐어요.  결론적으로 감독판의 재개봉은 무산되었습니다.  무기한 연기되다...  2020년에 <레옹: 디 오리지널>이라는 정체불명의 타이틀로 다시 극장에 걸린 상영본은 엄밀히 따져 26분의 추가 장면이 들어가지 못한 최초 삭제 버전이었던 거죠.  사실 2018년도 당시 감독판 재개봉이 무산되었단 소식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집에 감독판 DVD가 오래전부터 있어서 이미 수차례 감상했었거든요.  한데 흥미로웠던 건 그 감독판의 재개봉이 '취소'되었던 이유였습니다.  당시 관련 자료들을 통해 판단해보건대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움이 남기도 했어요.  이 작품이 근본적으로 중년 남성과 초등학생 또래 여자아이의 '비정상적 관계'를 통해 Pedophilia,  즉 '소아성애' 코드를 조장, 미화하고 있다는 일각의 그 민감한 비판에 대해서 말이죠.     





       















  미리 밝혀두자면, 저는 이 작품의 열렬한 팬입니다.  봐왔던 수많은 액션 영화들 중에서도 이것만큼 슬픔과 처연함이 짙게 배인 작품을 거의 보지 못했었죠.  개인적으론 뤽 베송 감독 작품 중 최고로 손꼽는 작품이기도 해요.  감정 표현이 쉽지 않았을 이 '마틸다'라는 캐릭터 연기를 무려 데뷔작으로 훌륭히 치러냈던 나탈리 포트만이 그 실력만큼이나 동시에 작품복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간 따랐던 영화 외적인 구설수들로 인해서 이 작품에 대한 심경이 좀 복잡미묘해진건 사실입니다.  2018년 당시 세 번째 재개봉이 무기한 연기될 정도의 시사점을 한번 되짚어볼 필요는 있어 보여요.


  애초에 감독판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 자체가 개봉 당시 미국 관객들의 엇갈리는 반응들로 인해 잘려나간 컷들이었습니다.  삭제씬들의 작품성이 떨어진다거나,  긴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죠.  중년 남성인 레옹과, 열두 살 정도의 소녀 마틸다와의 대화 장면들에서 느껴질 수 있는 '미묘한 기류'가 주요인이었어요.  최초 국내 개봉 시 상영되었던 버전은 미국 시장에서의 그 엇갈린 반응들로 인해 논란이 된 '불편한' 씬들이 덜어내진 버전이었습니다.  별도로 찾아 관람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감독판에서의 추가 장면들은 경우에 따라선 '상식'선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는 여지들이 있긴 하죠.  한데 그것도 관점에 따라 달리 보여요.  제 눈에는 전혀 그렇게 와닿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뭐지? 하며 뜬금없어 보이는 두 캐릭터의 감정적 유대를 좀 더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들이기도 해서 인상적이기도 했죠.  그런데.


  일이 터졌었습니다.  이 작품 감독 뤽 베송의 성추문 스캔들이 2018년도부터 불거졌던 거죠.  힘 있는 위치인 제작자, 감독으로서 다수의 여배우 및 여직원들로부터 성폭행, 성추행 스캔들로 고발되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지난 네 번의 결혼 상대 중 한 번은 당시 십대 후반의 미성년자도 있었어요.  심지어 <레옹>의 초기 각본에는 레옹과 마틸다의 성관계가 묘사되었다는 근거 불분명한 '루머'도 부각되었죠.  당사자인 뤽 베송이나 당시 배우, 스태프 누구에게서도 확인된 팩트는 아닙니다만 당시 불거진 성추문 스캔들로 인해서 불난 집 부채질이 되어 버린 셈.  

거기다 이 작품의 마틸다 역할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받았던 개인적 상처도, 가볍게 여길 부분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2018년 한 여성운동 행사장에서 자신의 당시 경험을 밝혔었죠.  이 작품으로 인해 받았던 주목이나 유명세만큼이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후 적지 않은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음을 말이에요.  이런저런 악재가 터지면서 이 영화 <레옹>에 대한 불편한 시각들이 예전과 달리 꽤 도드라졌던 겁니다.  그래서 감독판의 재개봉은 이미 알다시피 연기되었고 이후 2020년도 재개봉 또한 원래의 삭제판으로 이뤄졌어요.  여전히 스크린으로 그 원래의 감독판을 다시 만나는 건... 기약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난 안 죽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마틸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아직 님을 보내지 않았어요.  적어도 이 작품 속 두 인물,  레옹과 마틸다를 아직 놓지 않았죠.  처음 개봉 때도, 이후 따로 챙겨봤던 감독판에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관계'는... 욕정의 차원이나 에로스적 사랑이라기보단 제겐 '상처 받은 이들의 감정적 연대'로 와닿습니다.  

둘이 마주친 저 시점만을 놓고 본다면 분명 둘 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에요.  살인을 저질러 미국으로 밀입국하고 그 살인으로 계속 밥 먹고 사는 레옹은 그 일처리에 있어선 탁월한 프로지만 정신적으론 자폐적 세계관속에 갇혀 있는 인물입니다.  큰돈을 벌고 있음에도 사기꾼 같은 지인에게 사실상 돈을 모두 다 갈취당하고 근근이 용돈을 타 쓰죠.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인 데다 술, 담배, 마약, 여자 등 그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어떤 어른들의 '재미'에도 관심이 없어요.  일상의 모습으로만 보면 어느 순간 정신적 성장을 멈춰버린 유아적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나이 어린 소녀 마틸다는 마약쟁이 아버지, 재혼한 새가족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으며 학업도 포기해버린 상태죠.  가족들이 몰살당해도 그 사실 자체로 그다지 슬퍼하진 않을 정도였으니까.  어린 나이에 겪은 삶의 부침들로 오히려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 버립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 '덜 자란' 레옹이나 '되바라진' 마틸다 어느 쪽의 앞날도 특별히 희망적으로 바뀔 여지는 없었어요.  킬러가 나오고 경찰들이 등장하며 여러 번의 총격전이 벌어지는 액션영화의 외피 속에서 저는 매번 좀 다른 느낌의 짙은 애잔함이 내내 들었습니다.  외롭게 소외되던 두 사람이 삶의 어느 자락에서 마주쳐 서로의 감정적 보호자가 되어가는 그런 이야기.  

물론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서는 마틸다는 그 교감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사랑'으로 계속 생각하지만... 실은 아버지나 가족에게서 느껴져야 했던 따스한 안도감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레옹이란 캐릭터가 정말로 소아성애자였다면 당연히 마틸다의 그 감정을 이용하려 했을 거예요.  교묘하고 영악한 그루밍.  하지만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미성숙한 레옹도 그래서 더 계속 마틸다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 해줘야 하는 것들이 어디까지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보호자'로서의 선을 넘지 않았어요.  결국엔 슬픈 결말로 끝난다고 해도.


  다시 감상하면 할수록 이 작품의 결말이 보이는 그대로 비극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그저 서글프고 처연하게만 보였던 엔딩의 느낌이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와닿거든요.  둘 다 살아남아 계속 함께 지낸다면, 그들의 인생엔 찬란한 봄이 갑자기 짜란하고 펼쳐졌을까요?  달라지는 건 그다지 없었을 겁니다.  종국엔 수많은 민간인들과 경찰들을 쏴 죽인 극악의 범죄자, 그리고 그의 공범으로 함께 쫓기다 길거리 어딘가에서 비참하게 둘 다 고 말았을 테죠.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한들 평생을 그 지긋지긋한 어둠 속에서 늘 웅크리며 살아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레옹은 이젠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지켜냈습니다.  오래전 열아홉 시절,  허망하게 죽어버린 그녀와 평범히 살았다면 지금쯤 자신의 딸이 되었을만한 작은 아이 하나를.  

그리고 그 열두 살 소녀 마틸다는 이젠 더 이상 다 알고 있는 척, 괜찮은 척, 다 자란 척, 강하고 성숙한 어른인 척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지켜준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이젠 스스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게도 되겠죠.  이젠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생각한 그 순간, 죽음의 문 앞에 섰던 레옹도 그런 생각들이 스쳐갔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작품을 여전히, 오히려 더 놓을 수 없는 거죠.


맞습니다,  뤽 베송이 진짜 변태 새끼인지 아닌지 내 알바 아니지만...

레옹과 마틸다는, 늘 옳았어요.

제겐 계속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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