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괜찮았다가 너무 괜찮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다래끼가 난 내 눈에는 안약과 눈물이 뒤범벅되어 샘이 마를 날이 없다. 왜라는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자꾸만 이유를 찾고 싶어 지는 마음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유를 찾으면 이런 감정의 너울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도 마찬가지로 별 거 아닌 일에서 시작했다. 늦은 밤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엄마 아빠가 남편의 누나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내겠다 했다며 내 계좌로 돈을 보내면 되겠냐 하는 이야기였다. 수십 번 파인 생채기에 벼락이 내리는 기분이었다. 남편 가족과의 마찰에 자꾸만 나의 잘못을 찾는 엄마의 태도에 더 이상은 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을 단절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태도가 내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정하게도 말했다가 화도 냈다가 적나라하게 후벼 파기도 했지만 엄마와의 간극은 좁힐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생의 가벼운 말에 후두둑 눈물이 터지며 슬픔을 느끼는 나는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하틀랜드의 문장이 생각났다. 가난과 여자라는 낙인을 찍힌 채 태어나 조금은 나은 삶을 살게 된 주인공이 한 말이다.
"안전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나를 깊이 사랑해주는 다정한 아빠가 있었어. 우리 엄마의 삶과 내 삶의 차이가 그런 거였을지 몰라. 엄마는 벗어나지 못했던 가족의 굴레, 즉 중독, 10대 임신, 학업 중단 등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이"
어릴 적 고향에서 광주로 전학가 친척집에서 일 년을 살다 친척과의 다툼으로 다시 고향에 내려오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일기장에 쓰인 사촌오빠와 큰아빠에 대한 자질구레한 험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큰엄마가 아침밥을 먹던 내게 뺨을 두대 후갈기며 시작된 일이었다. 그 어린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일은 잘못이었지만 사실은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일기장에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잘못이란 말인가. 곧장 다시 고향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엄마의 성난 말투를 들으면서 내심 기대했었다. 애 일기장을 훔쳐보고 따귀를 때리고 쫓아내려 하냐고, 미운 큰엄마를 후갈겨 주기를.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나를 질질 끌어 내 몸의 반쯤을 베란다로 밀어 넣고 죽으라고 말했다. 선명하다. 죽어. 죽어. 너 같은 년은 죽어.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로 그 말을 했던 건지. 그렇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렇게 각인돼있다. 혹은 그 행동이 나에게 그렇게 말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생의 의지가 꺾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원하고, 무언가를 이뤄도 자꾸만 그날의 죽어, 죽어가 나를 따라다닌다. 나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간절했던 시기마다 언제나 나는 혼자였고, 나의 귓전에는 죽어, 죽어가 함께였다. 그래서 나는 종국에는 사람을 믿을 수 없고 그래서 더 불안해지고 날마다 벼랑 끝에 살아가고, 그래서 더 다칠 수 없어 매사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일도 그 사건의 연장선상과 다름없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는 남편의 가족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나의 부모가 거두절미하고 내 편을 들어주기를 원하지만 결국 부모는 또 내가 싫어하는 행동으로 나의 안부보다는 사돈댁의 경조사는 챙겨야 한다며 사회 혹은 타인을 선택했다. 내가 괴로워도 그들은 영영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결혼을 저주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어야 괴로움이 하나 더 늘지 않았을 텐데. 하틀랜드의 책에서 별생각 없이 10대에 임신을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내게 찍힌 한 많은 주홍글씨가 하나 더 늘어나는 일이었는데.
다래끼가 낫지 않는다. 낫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거울을 보면 더 커져있다. 마치 나를 조롱하듯이. 내 마음대로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내게 철썩 들러붙어 있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