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첫 회를 보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대략 전후 사정을 알아맞히는 아내를 보면 놀랍다. 아무리 봐도 닮지 않은 두 사람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남매지간이거나, 부잣집 아들이 가난한 집의 딸을 사랑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마력이 있다. 옆에서 “저게 말이 돼?” 하면서 거들면, 눈을 흘기며 “드라마를 이해 못 해요, 좀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우리가 잘 아는 옛이야기 중의 하나가 견우와 직녀다. 옥황상제의 딸 직녀와 세상에서 살면서 소를 키우는 견우가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직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렇게 잘하던 베 짜는 일을 그만두고 울기만 했고, 견우는 소는 버려두고 직녀를 그리워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두 사람이 오직 일 년에 하루 7월 7일만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은하수가 있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는 헤어져야 했다. 두 사람이 사랑은 하지만 만날 수가 없으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서, 지상에는 홍수가 났다. 이를 보다 못한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라는 다리를 만들어 두 연인을 만나게 해 주었다.
슬픈 이야기다. 사랑하는 연인이 일 년에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애처로운가? 애틋함을 넘어서 슬픔이 몰려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가여운 두 연인의 사랑을 안타까워한다. 다행히도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어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니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준다. 먼저 옥황상제의 자리에서 보자. 곱게 키운 하늘나라의 공주가 저세상의 천한 농사꾼을 좋아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집에 있는 딸이 직업이 변변찮은 신랑감을 구해 온다면 나도 고민이 되지 싶다) 그러나 딸의 사랑에 마음이 아팠던 옥황상제는 상사병으로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좋으니, 일 년에 한 번 만날 기회를 준다. 아버지로서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옥황상제는 또 까치와 까마귀를 동원해서 오작교를 만들어 준다. 이야기에는 까치와 까마귀가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회의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얼마간 전능한 옥황상제의 명이 있었지 싶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니까. 이야기가 더 길어졌다면 틀림없이 옥황상제는 견우를 불러와서 한자리 내주고 두 사람을 잘 살게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은하수를 건너서 두 사람이 만나는데 까치와 까마귀를 동원했다. 사실 까치와 까마귀는 우리 전통에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류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였지만 까마귀는 시체를 먹는 흉조가 아니었던가. 달라도 한참 다른 두 조류가 다리를 놓아준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아마도 어느 임금님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맨날천날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서인이니 하면서 척지고 사는 붕당에게 사랑 이야기를 핑계로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야기가 너무 딴 데로 샜는지는 모르겠다. 취직한 지 일 년이 된 딸아이를 보면 그냥 옆에 끼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도 저를 정말 사랑해 주는 견우 같은 남자를 만나되 오작교와 같은 슬픈 사연 없이 그만그만하게 살면 걱정이 없겠다. 요즘 독서 모임에 나간다고 하는데, 책 읽는 남자라면 나한텐 일단 50점은 먹고 들어갈 것이다. 아내는 글쎄, 같이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려줄 남자라면 괜찮을까? 딸아이가 과년하니 별별 이야기에 다 솔깃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