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프로야구를 무척 좋아한다. 고향이 대구인 이유도 있고, 짧지만 삼성맨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삼성의 팬이 되었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개막했는데,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최고 선수는 개막전 홈런의 주인공 이만수 선수였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 에이스는 이선희 투수였다. 나는 열혈 꼬마 팬이 되어서 틈만 나면 아버지를 졸라 야구장에서 경기를 직관했다. 어느 날은 야구 경기가 끝나고 전용 버스에 탑승한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 밖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버스 중간쯤에 앉아 손을 차창 밖으로 내민 그를 발견하고는 악수를 청했는데 그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당시에는 관광버스에 여닫이 창문이 있었다) 손에 에나멜을 발랐는지 손바닥이 까끌까끌했다. 그 이후로 열성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나 가수를 보면서 왜 눈물을 흘리는지 잘 알게 되었다. 요즘은 오승환 선수가 단연 화제다. 그의 별명이 '돌부처'다. 이기거나 지거나 얼굴에 변화가 없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옛날에 한 바보가 있었다. 빈둥빈둥 놀고 있는 바보를 보다 못한 어머니는 집에 있는 돈을 긁어모아 그를 비단 장수로 나서게 했다. 어머니는 바보 아들에게 “무조건 한 필당 열 냥은 받아야 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자꾸 깎으려 드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에게는 팔지 말고 말이 없는 사람에게만 팔아라.”라는 주의를 주었다. 바보는 저잣거리에서 비단을 팔고자 했으나 비단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비단이 부드럽다, 색깔이 예쁘다.”라며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통에 한 필도 팔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밤이 늦어졌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절을 지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돌부처가 말없이 서 있었다. 바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돌부처에게 비단을 맡기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내일 돈을 받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는 쿨쿨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당연히 돌부처 앞에 두었던 비단은 간 곳 없이 사라졌으며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바보가 돈을 내놓으라고 돌부처를 잡고 흔들자, 돌부처가 툭 넘어졌고 그 자리에 금은보화가 가득 있었다. “아하, 이제야 돈을 내놓으시는군.” 하고는 바보는 금은보화를 얻어 부자가 되었다. 사실 그 절은 도적들의 소굴이었고 도적들이 금은보화를 돌부처 밑에 숨겨두고는 모두 관아에 잡혀갔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직하게 살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옛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가만히 음미하면 그 깊이가 훨씬 깊다. 우선, 바보 아들을 비단 장수로 만드는 어머니의 자신감이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 같으면 아이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애가 타타서 집안에서 끼고 돌기가 쉽다. (요즘 이래저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민원으로 곤욕을 치른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온전한 아이라도 철저하게 보호하려고 한다. 밖은 위험하니까. 그런데 이 어머니는 바보 아들을 당당하게 세상에 내보낸다. 게다가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도 일러준다. 그 방법은 아마도 어머니가 세상을 살면서 겪은 노하우가 틀림없다. 바보 아들은 또 어머니의 당부를 잘 따른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의 우상이었던 이선희 투수나 오승환 투수의 공은 돌부처만큼 묵직했다. 그들이 야구판에서 보여주었던 투혼이 어머니의 바보 아들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변함없는 직구로 다가온다. 야구든 비단 장사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믿음이 있다면 우리 앞에도 돌부처가 턱 나타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