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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Mar 07. 2024

오래 살고 볼 일

        

   다들 오래 살고 싶은 모양이다. 누구는 반신욕을 하고, 누구는 근력을 키운다고도 하고, 누구는 소식(小食)으로 건강을 유지한단다. 나는 동서가 약사인 관계로 혜택을 좀 누린다. 명절마다 집에 들르면서 영양제를 두고 가는 통에 눈과 혈액 순환에 좋다는 것, 뱃살을 줄여준다는 것 등을 수시로 먹는다. 떨어질 만하면 배급을 해 주니 참으로 든든하다.


『필원잡기』에 부자의 이야기가 있다.

  국재(菊齋) 문정공(文正公) 권부(權溥)는 임술년 임자년 기미일 기사시에 났는데, 점(占)을 치는 이가 보고, “수명이 길지 못하겠다.” 하였다. 그 아버지 문청공(文淸公) 단(坦)이 말하기를, “만약 덕을 쌓으면 조금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의 중에게 들었는데, 덕을 쌓는 조목이 세 가지가 있는바, 길 가운데로 다니지 말고, 흘러가는 물에 목욕하지 말고, 음식을 먹을 때 좋은 것을 가리지 않는다 하니, 너는 마땅히 힘쓸지어다.” 하였다. 국재가 종신토록 이 말에 명심하고 힘써서 잠시 동안이라도 어기지 않았는데 마침내 85세의 수(壽)를 누렸고, 지위가 일품에 이르렀으며, 한 가문(家門)에서 봉군(封君)한 이가 아홉 사람이나 되어, 복록(福祿)의 융성함이 고금에 거의 없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덕을 쌓은 효험이다.” 하였으니, 점치는 이가 수명이 길지 못하다 한 것은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다. 〔한국고전번역원 DB〕

 

 옛사람들은 수명을 길게 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 덕을 쌓는 일이라고 보았다. 덕을 쌓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주문한다. “길 가운데로 다니지 말고, 흘러가는 물에 목욕하지 말고, 음식을 먹을 때 좋은 것을 가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길 가운데로 다니지 말아라, 라고 하는 말은 지금도 쓰이는 말이다. 집을 나서면 어른들의 말씀은 항상 주변을 잘 살피라고 하시지 않는가. 그런데 길 가운데로 가는 사람은 눈에 확연하게 띄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무 나서지 말라는 말이 되겠다. 또한 “주변을 잘 살피라.”라는 말은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기도 하다. “흐르는 물에 목욕하지 말아라.”라는 말은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뜻이다. 거친 물살이 내려오는 강이나 개천은 미끄러지기가 쉬우니 떠내려갈 위험이 있다. 또한,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중하라는 엄중한 경계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제시한 대로 음식을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는다면 균형 잡힌 영양분이 공급되니 건강에 좋은 처방이다. 가만 듣고 보면 옛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 길 조심하고 위험한 곳은 피하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한다면 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점을 본다는 내용이 나온다. 점을 본 결과 ‘수명이 짧다’라는 점괘가 나왔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세 가지 주의할 점을 일러준다. 그래서 국재는 그 말대로 했더니, 나중에 일품 벼슬에 오르게 되었고, 가문에서 자그마치 관직에 오른 자가 아홉이나 되었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운명을 점(운)에 맡기지 않고 부모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자율적으로 살았더니, 천수를 누리고 집안도 화목하게 되었다는 교훈을 준다. 또 하나,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 ‘덕을 쌓는 일’이라고 말한다. 덕 쌓는 일과 수명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마는 덕을 쌓는 일은 이웃에게 복을 베푸는 일이며, 복을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하게 되므로 적을 만들지 않게 된다. 뭇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난리 속에서도 살아남았을 테다. 그래서 “점치는 이가 수명이 길지 못하다 한 것은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다.”라고 후세에 전하는 걸 보면, 점쟁이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모름지기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동서가 가져다주는 영양제 덕분인지 병원에는 가본 일이 별로 없다. 비단 영양제가 아니라도 사람의 인품이 좋아서 동서가 참 좋다. 언젠가 동서의 집에서 자선단체와 대학에 기부하고 받은 여러 감사패를 본 적이 있어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마음이 넉넉하니 그 집에서도 봉군(封君)하는 이가 여럿 배출되겠다. 그걸 보려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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