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5분이면 충분하다
7. 고난 복문
어렸을 적에 감기에 걸리면 어머니는 고추 감주를 만들어 주셨다. 매콤한 감주를 한 사발 마시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내면서 한숨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 그것으로 끝이다. 병원에 가거나 해열제를 먹어본 기억은 없다.
평소에는 먹고 체할 것도 없었지만, 명절이나 잔치가 있으면 과식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체하면 소금을 한 숟갈 주시면서 먹으라고 했다. 싫지만 매 맞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한 바가지 물로 소금을 먹어야 했다. 그러면 용케도 아픈 배가 낫는다.
우리는 고난(苦難)을 싫어한다.
그런데 고난이 복문(福門)이라니, 나쁜 것인 줄 알았던 고난이 복으로 들어가는 문(門) 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고난하면 질병, 재난, 빈곤 등이 생각난다
고난이 없는 집은 없다. 어느 가정이나 조금씩이라도 고난은 가지고 있다. 대개는 고난이 그냥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재수가 없거나, 운(運)이 나빠서 온다고 생각한다. 고난이 오는 것을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난은 우리가 고의로 불러 오지는 않았다 해도, 알게 모르게 내가 불러온 부분이 없지 않음을 부인(否認)할 수 없다.
어렸을 적에는 약(藥)이 없어도, 병원(病院)을 몰라도 잘 자랐다. 그런데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남이 약을 먹으니까 나도 따라서 약을 먹고 병원에도 가기 시작했다.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아픈 상태로 약도 안 먹고, 병원에도 안 가면,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약을 먹었다. 어떤 때는 남들이 무식(無識) 하다고 생각할까 봐서 어쩔 수 없이 약을 먹었고, 병원에 갔는데, 지금은 그것이 당연한 일로 되어버렸다.
문제는 약이나 주사제에도 면역성이 있어, 점차로 그 도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던 병이 생기기도 한다. 약은 약을 먹고 치료하여 다시는 약을 안 먹기 위해 먹는 것인데, 약이 약을 부르고 있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하면서 약을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먹어야 하는 오늘날의 실정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던 것을 이제 와서는 호미가 아니라 가래로도 못 막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암이나 고혈압, 등 난치병들이 그것이다.
나는 30대 초반에 약(藥) 먹는 것을 끊었다, 그리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종합검진을 받을 때, 외에는 병원을 가지 않는다. 그 대신 매일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다.
약을 안 먹거나 병원에 가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지만, 막상 이렇게 길들이면 오히려 더 편하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몸을 따뜻하게 하고 푹- 잔다. 그러면 몸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과식을 했거나 과음을 하면, 굶는다. 한 끼만 굶으면, 몸은 다시 회복된다.
감기 기운이 있는데도 계속 차가운 것을 먹고 마시며, 마음을 꺼리면서 무리하게 몸을 쓰면, 반드시 몸은 거부 반응을 하는데, 그 거부반응이 감기나 몸살이다. 감기는 내가 지금 무리를 하고 있으니까 조심하시오, 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일까?
한(큰) 나가, 몸 나 즉 우리가 말하는 ‘나’ 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나면서부터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자라면서 ‘나’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과 과(過) 보호로 인해 점차 병약(病弱)하고 허약(虛弱)해져 가고 있다.
내가 무리하여 정상적인 ‘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한나는 ‘나’에게 경고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한나의 경고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다가 못 견디게 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하느님이나 부처님, 또는 의사를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한다.
고추 감주를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는 것은 고(苦), 괴로움이요, 고난이다. 그러나 그다음에 찾아오는 원상회복은, 즐거움이요 복(福)이다.
체하여 속이 더부룩하면 얼마나 괴로운가? 그러나 소금 한 숟가락을 억지로 먹는 괴로움을 견디면, 정상이 되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고난 복문이다.
고난(苦難)은 성스러운 것이다.
“환난을 즐겁게 생각하시오, 그 환난(患難)은 인내(忍耐)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희망을 낳는다” (로마서 5-3)
괴로움은 환희로 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난은 우리를 눈뜨게 하고, 고통의 신비를 통하여 세상을 이끌어 간다. 부활의 신비는 십자가의 고통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것으로, 크리스천들의 기본 신앙이다.
불교도 사성제(四聖諦)라 하여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진리로 삼고 있다. 고(苦)는 성스러운 것으로, 원인인 아집(我執)을 없애면 반드시 편안함을 얻게 되어있다. 그 이루는 길을 여덟 가지 바른길, 팔정도(八正道)로 제시하지만, 고(苦) 자체는 매우 의미가 있고 성스러운 것으로, 고(苦)를 통하여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1997년 우리나라에도 IMF라는 반갑지 않은 국난이 찾아왔다. 싫다고 해서 도망간 사람은 누구나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국난을 맞이해야 했다. 개인에 따라서 강약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안 찾아간 집은 없다. 우리 회사에도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면서 찾아왔던 IMF다.
우리는 IMF를 즉시 인정(認定)했다.
1) 수입(輸入)을 많이 하고 수출(輸出)을 적게 하니 외화(外貨)의 배런스가 깨젔고
2) 저축보다 씀씀이를 크게 하니 부채(負債)가 못 견디게 커졌으며
3) 기술력이 부족하여 부가가치(附加價値)가 적은 것만을 생산하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졌으니,
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 화(禍)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警告)로 해석을 했다.
다행히 우리는 IMF가 오기 1년 전인 1996년부터 조금씩 준비를 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IMF는 우리에게도 큰 짐이었다. 일본의 수입선(輸入先)을 찾아가 원가절감(原價節減)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일본에서 가공하던 것을 한국에서 가공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가격 인하의 효과를 얻어냈다. 그리고 어떤 품목은 아예 국산화의 길을 선택하여, 힘들긴 했지만 결국은 원가를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이 어려움을 이기는 것은 힘들었지만, 덕택에 비정상적인 경영을 정상화하게 되었다. 고난(苦難)이 곧 福門(복문) 임을 확인하는 IMF다.
인생은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은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해석(解析)이 중요하다.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가 맞는 괴로움이나 서러움을 그냥 맞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거기에 의미(意味)를 부여(附與)해서, 적극적(積極的)이고 긍정적(肯定的)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귀찮고 피하고 싶은 고난(苦難)이지만, 이는 성공(成功)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므로 들어가야 한다.
고생(苦生)은 복(福)으로 들어가는 문(門) 임에 틀림이 없다.
고난의 문(門)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복된 일을 당신이 직접 찾는 것이야 말로,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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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이 글을 통해서 著者(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인생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만 산다면, 잘 살아지는 게 아니고 오히려 후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말고, 이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살아야 합니다.
잘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생각 하나만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저자는 그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결심하면 모두가 내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을 안 해서 그렇지) 결심만 하면, 세상은 모두 내 편이 되어 나를 도와줍니다.
그렇지만 나만 유익하게 살지 말고, 너에게도 유익한, 상생(相生)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로 사는 것입니다.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로 산다는 것은, 고난 복문(苦難福門)을 생활화(生活化)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 속에는 반드시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면서 찾아내야 합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지 말고, 일생을 그렇게 살기로 결심(決心)합시다.
그러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만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보물 창고입니다. 그 보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물을 당신 뜻대로 써먹어야 합니다.
한번 선택했으면, 좋은 선택이냐 나쁜 선택이냐를 따지지 말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 합니다.
불평하고 짜증 내는 것은, 나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안 좋은 삶입니다.
게으름을 피우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자꾸만 나를 비참하게 할 뿐, 오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이 쉽게 풀리거나, 요행이 찾아오기를 바라지 말고, 나의 일은 당당하게, 내가 처리합시다.
공짜는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괴물입니다. 편히 살려고 하지 말고, 바르고 당당하게 삽시다.
그러면 세상 모두가 당신의 원군(援軍)이 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