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5분이면 충분하다
6. 다르다는 것은 축복이다
서로 다른 것을 불편하게 느낄 때가 많다. 열등의식으로 상대보다 내가 부족(不足)하다고 느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다름은 축복(祝福)이 될 수도 있다. 열등의식이 변(變)하여 내공(內功)이 되면, 다른 그것이 오히려 축복으로 바뀐다.
1966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일본인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문화의 차(差)가 컸다. 어쩌다가 일본산 칼이나 손톱깎이를 가지게 되면 횡재를 하는 것 같았다. 국산은 칼 날이 쉽게 무디어 저서 쓰기 힘든데, 일산이나 독일산은 칼날이 무뎌지지를 않아서 인기가 좋았던 시절의 얘기다. 여럿이 모였을 때는 당연히 우리말을 하지만, 나 혼자 있거나 일본인들 속에 있을 때에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굳이 한국인임을 밝히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다. 말을 안 하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에 비해 우리가 뒤졌다고 느꼈었으므로 한국인임을 굳이 표시 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왜 그랬을까?
다름을, 부족함으로 생각하고, 감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상태(狀態)에는 우열(愚劣)이 없건만 우리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판단 함으로써,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열등감(劣等感)의 작용(作用)이다.
일반적으로 열등감이 생기는 것은 내가 상대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뒤지면 안 된다거나, 상대와 동등(同等) 해야 하는데, 내가 뒤져 있어서, 손해(損害)를 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는 의례히 나를 돋보이도록 과장을 한다.
경제적 우위(優位)를 보이기 위해 명품 넥타이를 매기도 하고, 명품 구두를 신어 튀어 보려고 한다. 지적(知的) 우위를 위하여 잘 모르는 문자를 쓰거나, 외국어를 써서 상대보다 우위임을 과시(誇示)하려고도 한다. 때로는 신체적 우위를 위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서 나의 부족함을 위장하고, 그것도 안 되면 폭력을 써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한다.
그러나 감추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자루 속의 바늘처럼 자꾸만 겉으로 삐져나온다. 세상의 모든 것은 대명천지(大明天地) 밝은 곳에서 축복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땅속에 파묻혀 썩어 없어지려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감추는 대신 認定(인정) 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가, 그와 내가, 다름을 인정(認定)하자.
시골과 도회지는 다르다. 다를 뿐만 아니라, 달라야 한다.
일본과 우리는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일본이 있고,
또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름, 그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름’과 ‘나’의 관계(關係)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문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다름이 크면 클수록, 선명(鮮明)하면 선명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진다.
우리는 오늘 21세기를 살고 있다.
‘나 다움’이 아니면, ‘남 다르게’ 살 수가 없다.
오케스트라의 멤버처럼 우리는 조화를 이루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나 다움’이 강조되는 현실이다.
피아노는 피아노답게,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답게, 트럼펫은 트럼펫답게, 자기 색갈이 또렷해 질 때에, 비로소 좋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다.
다름을 인정(認定)하면 다른 것이 축복(祝福)으로 바뀐다. 다르다는 것은 ‘모방하지 않았다’라는 뜻이다. 다름은 다름을 ‘추구해야 한다’. 나는 ‘나’다워져야 하고, 너는 ‘너’다워질 때, 우리는 조화(調和)를 이루게 된다. 우리는 이 조화를 아름답다고 한다.
화장실을 뒷간이라고 부르고, 방에서 멀리 두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비 오는 날이나 추운 겨울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 큰 고역(苦役)이다. 화장실은 더러운 곳이고 냄새나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멀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밤늦게 뒷간에 가는 것이 고역이다. 그래서 불편을 덜어드리려고 요강을 방에 넣어드렸다. 소변만을 볼 수 있도록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드린 것이다. 화장실과 요강은 우리나라에서만 인정되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어느 집에 가거나 가장 중요한 곳, 가까운 곳에 화장실을 둔다. 화장실은 언제라도 갈 수 있도록 화장실과 우리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개선시켰다.
화장실은 똑같은 화장실인데 화장실과 우리와의 관계를 멀고,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서, 가깝고 깨끗하고 편안한 곳으로 바꾼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매일 청소하고, 물과 전기를 소비하는 경제적 부담을 감내(堪耐) 해야 한다.
아무리 편리하고 좋은 화장실도 관리(管理)를 소홀히 하여 냄새나고 더럽고, 불편하면 다시 옛날의 뒷간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화장실과 우리의 관계는 똑같은 목적(目的)을 갖더라도 나의 관리능력에 따라 위치가 결정되고, 그 기능(機能)도 달라진다.
다름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능력을 키우면 다름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이 됨을 알 수 있다.
나는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친구들은 어떻게 자식 넷을 월급쟁이가 키울 수 있느냐고 부족(不足)한 사람이라고 놀려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들이 넷이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가 많기 때문에 애들을 먹이고 가르치려면, 남들과 똑 같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네 아이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하고, 남들이 쓰지 않는 머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노력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쁜 면도 있겠지만, 좋아지는 면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낯설고 물선 일본땅에서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그리고 유치원생과 이제 갓 젖을 뗀 아이를 데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인 나에게 계속 노력해야만 하는 원인을 제공했지만, 게으른 나를 부지런한 나로 바꾸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어 4년간의 주재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덕택에 일본말을 잘할 수 있는 가족이 되었다. 4학년생 꼬마는 후일 88 서울 올림픽에서 일본 수상의 통역을 담당했고 둘째는 일본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나는 일본 회사와 기숧제휴를 하여 국내 유일의 부직포-롤 회사를 창업하여, 철강과 자동차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족한 나를 도와 아이들을 정상으로 키워준 아내와, 좋지 못한 환경이었지만 잘 자라준 네 아이들에게 나는 늘 고맙게, 그리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네 아이는 나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 덕택에 우리가 좋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것은,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하느님은 절대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시지 않는다.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쁘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돌아보라는 신호일뿐이다.
다름은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개선해서 축복으로 만들라” 는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역은 이렇게 말을 한다.
同而異 異而同(동이 이 이이동),
같은 것에서 다름을, 다른 것에서 같음을 찾음으로써,
난세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찾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