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위장 운동에도 관여한다고?
프로게스테론은 이처럼 여성호르몬으로써 임신을 유지하고 월경 주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프로게스테론이 여성호르몬이라고 여성과 관련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게스테론이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바로 대장 운동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은 대장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대장에도 근육이 존재한다. 대장의 근육들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음식물을 대장의 끝 부분인 직장과 항문까지 도달하여 배변 활동을 활발하게 해 준다.
하지만 프로게스테론은 대장의 근육을 이완하여 음식물이 잘 내려가지 못하게 하여 속이 더부룩해지거나 변비가 생기게 할 수 있다. 여자라면 다들 배란 후와 생리 전에 변비가 잘 생기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또한 임신 중에 변비가 더 잘 생기는 이유도 프로게스테론의 작용 효과이다. 월경 전반기와 폐경이 된 후에는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불과 1.0 microgram/L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반면에 배란 후에는 3.3 ~ 25.6 microgram/L까지 상승하게 되고, 임신 3분기에는 48.4 ~ 422.5 microgram/L까지 상승하기 때문에 변비가 흔하게 발생한다.
프로게스테론의 장운동을 느리게 하는 작용을 알게 되자 이 호르몬을 차단하여 변비약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프로게스테론이 억제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유사체(유사한 기능을 하는 물질)를 개발하여 반대로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억제하고자 한 이 약제의 이름은 ‘미소프로스톨’이다.
이 약제는 실제로 음식의 위장관 통과 시간을 유의하게 감소시켜 변비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운동 촉진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약제는 변비약보다는 위궤양약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프로게스테론은 대장의 운동을 느리게 함과 동시에 식도와 위 사이에 존재하는 괄약근을 이완한다. 이 괄약근이 수축함으로써 위에서 식도로 음식물이 역류하지 않도록 하는데, 프로게스테론이 이 괄약근을 이완하게 되면 역류 증상과 속 쓰림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미소프로스톨 이런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여 역류와 속 쓰림을 개선하는 소화성 궤양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현재는 더 좋은 궤양 치료제들이 많이 개발되어 사용 중이기 때문에 이 약제가 많이 처방되고 있지는 않다.) 미소프로스톨은 너무도 당연하게도 임신부에서는 금기이다. 임신을 유지하는 프로게스테론을 차단하는 약제이기 때문에 유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신의 첫 삼 분기에 이 약제에 노출될 경우 기형 위험이 약 3배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유 중에도 투약해서는 안된다. 반면에 이 약제는 자궁의 수축을 유도하기 때문에 유산이나 유도분만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정상보다 낮을수록 월경주기가 불규칙적이고 생리통이 심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월경 전 증후군 증상이 심해지고, 불면증이나 우울감이 나타나기도 하며 임신이 잘 안 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프로게스테론의 부족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증상들에 대해서 프로게스테론 보충 치료를 해볼 수 있다. 프로게스테론은 흡수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주로 크림이나 젤 형태로 피부에 바르거나 질에 직접 투약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구 피임약의 경우에는 프로게스테론을 에스트로겐과 함께 투약하여 생리주기를 조절한다. 피임약은 생식 능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적절히 조절하여 난포의 성장과 배란을 억제하고 자궁경부를 비후하고 점도가 높게 하여 정자의 운동을 방해하여 수정을 억제한다.
피임약은 21일간 매일 1알씩 복용하다가 7일간은 복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약제를 복용하지 않는 7일 동안 생리가 일어나게 된다. 피임약을 복용하게 되면 생리 기간이 짧아지고 출혈량도 적으며 생리통도 줄어든다. 하지만 메스껍거나 토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성욕이 감소할 수 있다. 또한 체중이 증가하거나 배가 더부룩해지고 변비가 생길 수도 있다.
피임약 복용에 주의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피임약 복용을 결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피임약의 위험성은 주로 혈전(혈관 속에서 굳어진 피 덩어리)의 형성을 촉진한다는 특징에서 기인한다. 발생빈도는 0.05-0.12% 수준으로 매우 낮지만, 흡연을 하거나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질병이 있는 사람에서는 혈전증과 심근경색과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혈전증의 위험은 나이에 따라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만 35세 이상의 여성에서는 가급적이면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여성호르몬이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종양인 유방암을 앓고 있거나 유방암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피임약이 간에서 대사 되기 때문에 간수치가 심하게 상승되어 있는 경우에도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