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에세이 - 공(空)
사용하지도 않고 모아뒀던 엽서를 꺼내 크리스마스라는 명목으로 친구에게 부칠 편지를 써 내려갔다. 요즘이 아니면 건네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조금 쑥스러워지니까. 그러다 문득, 나에게 있어 비우기를 시작하게 된 최초의 정리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몸으로부터 마음으로.
머리카락
2019년 11월 25일.
스님도 아니고. 현물이 아닌 몸에서 뻗어나가는 일부분을 자른 게 비움의 첫 시작이라니.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도 의외의 부분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게 생애 처음이었던 날, 그토록 몸이 가볍고 자유로운 느낌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정돈에 필요한 시간은 10분. 부지런히 움직이면 5분도 가능했다. 정돈된 나의 몸은 항상 준비된 사람처럼 어딘가 뛰쳐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아침 산책이든 새벽 운동이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정리된 몸이었다.
굿즈 굿즈 굿즈
나는 사실 대단한 수집가였다. 중학생 때부터 열렬한 팬이었던 가수의 CD와 영화를 좋아해 영화 OST LP, 포스터, 엽서, 포토카드, 피규어, 봉제인형, 관람표 등 다시 살펴볼 일 없는 물건들은 수도 없이 모았다. 그뿐인가? 트위터를 순회하며 배지를 100만 원 넘게 사 모으기도 하고, 차茶와 다기에 빠져 지금은 선반 상단 구석을 차지한 차 도구와 유통기한 내에 먹지도 못할 찻잎들을 일본 여행을 통해 구입했다. (차라리 사라지는 먹을게 낫긴 하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는 것은 좋지만 나의 감정을 물건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감정은 넘치고 소멸되지만 물건이 넘치면 공간과 통장 잔고가 소멸된다. 사랑하는 영화의 스틸컷을 따서 포스터까지 제작하여 방 한편에 걸어두고 며칠, 문득 포스터가 질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좋아했던 영화가 지겨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걸어두었던 포스터와 피규어를 치워버렸고 감정을 보존했다. 내가 수집해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었다. 물건을 통해 기억을 되짚으면 왜곡된 기억이 실체를 흐리게 만든다. 시간이 지났을 때 물건이 아닌 설레었던 존재를 다시 마주하며 선명하게 감응하는 시간이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감정적 수집가
인류에게 있어서 최초의 취미는 '수집'이라고 한다. 원초적인 욕망인 만큼 지금도 가끔 물건의 유혹에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외친다. '과시는 결핍이다. 소비는 감정이다.'
7년 전 첫 직장에 근무했을 때 나를 표현할 단어를 찾자면 '착실한 욜로 쟁이'였다. 착실하게 저금하면서 남는 돈은 기분대로 썼다. 우울하면 단 것을 먹어야 하니 딸기 생크림 조각 케이크를 샀고, 기분이 좋은 날은 피자를 사들고 갔다. 월급날에는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옷과 화장품을 결제했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 살지 그 정도도 안 하면 어떻게 살아가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이 정도도 안 하면 어떻게 저 환멸 나는 회사에서 매일을 살아갈 수 있겠나. 하지만 이러한 소비 습관의 문제는 회사를 그만두고 찾아왔다.
퇴사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많다. 퇴직금도 있다. 소비를 감정대로 하는 사람이 시간과 돈이 있다? 브레이크가 없다. 퇴사 후 소속감 없이 덩그러니 '나'와 남겨진 나는 혼자 여행을 갔다 오고, 그 당시 배지에 빠져 100만 원을 넘게 썼다. 그다음 해에는 영화에 미쳐서 온갖 굿즈를 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불안해했던 것 같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일시적인 기쁨과 함께 찾아온 공허함. 갑자기 생겨난 거금이자 한정된 거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망각시켜줄 예쁜 쓰레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언제까지고 회피할 수 없었다. 매일 생겨나는 예쁜 쓰레기들은 나의 공간을 잠식했다.
혹시 당근...?
2020년의 세 가지 키워드를 뽑으라 한다면 개인적으로 주식, 코로나, 당근 마켓이다. 2019년 하반기. 가벼워진 머리카락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재테크 강의를 신청했다. 금리, 펀드, ETF 주식 등 재테크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강의였고 경제 공부와 아주 소소하게 주식을 시작하게 되면서 별안간 충격에 빠졌다. 첫 번째는 관점의 변화였다. 주식을 시작했을 뿐인데 세상의 뉴스가 다르게 보였다. 두 번째, 코로나가 터졌다. 소소한 금액이었을지언정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와 절벽 같은 차트에 얼이 빠졌다.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경제 공부와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돌아오는 손익과 배당금의 현금 숫자는 내가 지금껏 수집했던 물건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 물건들은 정말로 나에게 필요했었나?
코로나의 여파로 강의가 비대면으로 바뀌고 시험이 과제로 대체되면서 장소의 제약이 없어졌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원과 숲으로 나가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정리된 생각과 함께 애정 했던 물건들을 당근으로 거래했다. 피규어, 영화 굿즈, 인형, 전자기기, 음반, 옷, 책 등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을 꺼내고 닦고 포장하며 물건에 있던 감정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치마와 화장품
머리 짧게 자르고 이후 치마, 화장품과 사이가 어색해졌다. 치마를 입지 않게 된 순간부터 속바지와 계절별 스타킹이 필요 없어졌다. 화장을 하지 않은 순간은 단계적이었다. 치크와 눈 화장을 하지 않으니 각종 브러시, 뷰러, 섀도, 아이라이너가 비움 박스로 들어갔다. 하늘 아래 같은 레드는 없다는 립스틱이 사라지고 물광 피부용 베이스, 퍼프, 컨실러, 하이라이터, 쉐딩, 픽서가 사라졌다. 머리가 짧으니 머리끈도 핀도 필요 없어지면서 옷장과 서랍이 가벼워지고 여백이 생겼다. 이제야 모든 공간과 정신에 호흡할 수 있는 틈이 마련되었다.
향기와 활자
이제 여백이 생긴 공간에 무언가 더 채워 넣고 싶은 감정이 사라졌다. 물건이 아닌 정보와 경험에 다채롭게 반응하고 감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벼워진 공간은 가벼워진 나의 몸과 같이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인류가 아무리 진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세 가지는 인간, 공간, 시간이다. 나는 나의 공간에 물건이 아닌 온전한 나를 채우고 향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물건을 비울 때마다 물건에 둘러싼 감정을 마주한다. 감정을 사진처럼 각자 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수십 가지 물건에 대한 감정이 한 권의 수첩에 담기고 넓은 방 안에서 활자에서 유영한다. 책과 향은 유영을 딛게 하는 사다리가 되었다.
그저 난생처음 숏컷을 해보고 화장품을 비우고 옷을 비우고 취향의 물품을 비웠을 뿐인데 -취향은 여전하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방을 보고 뭐가 이렇게 없냐고 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비우면… 머리를 자르면… 마음을 비우면…” 설교를 늘어놓는 것보다 “아, 나 미리멀리스트야”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단출하다. 하지만 어떤 st에도 편입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방인으로서 3년 후 나의 모습과 신념이 어떨지는 예상 밖의 일이다. 그저 여전한 호기심으로 모든 것에 이해와 사랑을 쏟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도 빈칸을 채울 수 있도록 비우고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