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에세이 - 시(時)
2102년 1월 6일은 금요일입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미묘한 미소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저의 사진을 여든 살의 생일을 맞은 제 아이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을 테지요. 아이의 이름은 봄입니다. 저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아이가 살아갈 삶에는 봄이 희미해질 테니 아이를 불러줄 때 자신의 이름을 돌아볼 때 계절의 감각을 잊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2050년은 제 아이가 스물여덟 살이 되는 해로 아이슬란드로 떠났던 2022년 스물여덟 저의 나이와 같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햇수로 3년이 되었던 터라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웠지만 다행히 빙하 지질학 탐사를 위한 예외 조치로 입국이 허가되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샛노란 민들레 자수가 놓인 턱받이를 봄이의 목에 두르다 말고 받게 된 입국허가 소식에 턱받이를 들고 춤을 췄어요. 저는 그 해 11월, 아이슬란드로 떠나 인도의 히말라야, 티베트, 아르헨티나에서 탐사를 마지고 2년 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봄이는 어릴 적부터 물을 좋아했습니다. 목욕을 하는 것도 바다 수영을 하는 것도 보리차 위에 동동 떠다니는 얼음 조각을 바라보는 것까지 말이죠. 오븐에 노릇하게 구운 두부 텐더를 간식으로 나눠먹고 그릇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묻더군요. "엄마가 서 있던 얼음도 사라져?"
오크외퀴들 빙하는 어머니가 지금의 저보다도 어려던 2014년, 아이슬란드에서 공식적으로 빙하 지위를 잃은 최초의 빙하라고 합니다. 칠백 년의 시간이 사라지고 남은 이 대지와 차가운 추도문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제는 *한국전쟁의 백주년을 기념하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쏟아졌는데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국제정세와 아파트 재개발과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팀원들과 스나이펠시외퀴들로 향하기 위해 드론으로 올라탔어요. 28년 전 어머니의 새하얀 웃음보다 투명했던 이 자리가 이제는 까끌거리는 돌과 흙더미만 남았습니다. 삼백 개가 넘게 있었던 2000년도의 빙하가 지금은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지만 탄생이 없는 세상은 너무나 고독합니다. 오늘날의 인구는 90억 명입니다. 어떤 탄생은 삶을 연명하고 어떤 탄생은 죽음만이 운명입니다. 어머니, 제가 탄생을 이루게 된다면 그 아이는 제게 남은 하얀 거인을 볼 수 있을까요. 민들레를 노란색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자유와 이상의 끈을 이끌고 운명으로 추락하는 세상을 행복하게 맞이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읽고.
2022-01-06
빙하 해빙이 인간을 선별할까. 히말라야 빙하는 겨울 폭풍우와 몬순 강우를 모아두었다가 사람들에게 물이 필요한 가뭄철에 내보낸다. 빙하는 계절적 변동을 흡수한다. 극대화된 기상 조건은 대규모 범람과 가뭄을 번갈아 일으킨다. 생계를 잃은 사람의 분노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 괴물에게 습격을 받는 세계의 가능성은 가늠하면서도 물이 부족해진 국가가 풍요로움을 되찾기 위해 비참한 노동자를 이끌고 다른 국가의 물길을 돌리려는 전쟁은 무량한 미래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듣는다. 우리는 4년 전에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며 2050년까지 28년이 남았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되었다.
*꽃의 수분을 돕는 벌과 등에류는 노란색 꽃에 잘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