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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삼 Jan 18. 2022

추억은 불의 손을 잡고

한 글자 에세이 - 화(火)

 아주 어릴적부터 바퀴가 달린것을 타면 멀미가 났다. 단 5분을 달리건 1시간을 달리건 상관없이 뒷자석에 힘없이 늘어져서 울렁이는 속을 외면했다. 명절은 고역이었다. 부산에서 강원도 삼척 도계시 점리 xxx까지 6시간. 부산의 할말많은 교통 예절과 차막히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한 시간은 더 추가해야 했다. 아주 가끔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는것보다 비몽사몽 시간을 흘러보내는게 덜 괴로울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속도로 귀성행렬 속에서 배웠다. 인내의 경험치가 쌓이는 도로를 벗어나면 카트라이더를 하는 사람처럼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산을 낀 도로를 맞이한다. 울렁임으로 산 송장이 되어갈 무렵 비포장 산길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외가집에 도착한다. 누렁이 황구였나 꼬질꼬질한 백구였나. 내 몸집보다 큰 녀석이 힘차게 짖으며 귀성객의 방문을 알리면 툇마루에 앉아있던 외할아버지가 반겨주었다.


 외할아버지가 손수 지었다는 이 초가집에 오면 심심하게 재미 있었다. 꼬리로 파리를 쫒아내는 소 두 마리에게 여물을 물려주다가 축축한 혀에 손가락이 닿으면 진저리치며 도망갔고 송아지는 내가 오면 뒤로 숨어서 몰래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 문 옆에는 바로 닭장이 있는데 엄마를 보초로 세워놓고 닭들이 집에 들어갔을 때에만 화장실을 갔다. 닭에게 쪼인 경험이 있어서 어른이 된 지금도 조금 무섭다. 방은 총 4개 였다. 부엌을 기점으로 두갈래로 나뉘어 방이 2개 씩 있었는데 툇마루로 통하는 쪽의 큰 방에 어른들이 둘러앉았고 그런 어른들과 분리되고 싶은 아이들은 그 옆 작은 방에 모였다. 이 집은 아궁이의 장작불로 바닥을 데워서 장판의 어느 곳은 미지근하고 어느 곳은 샴 고양이의 얼굴처럼 새카맣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삐걱대는 문살을 열고 나가 미지의 풀숲을 탐방했다가 이름모를 식물의 씨앗을 잔뜩 묻히고 돌아왔다. 그래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아궁이 속의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었다. 한참을 바라봐도 같은 불빛은 없었다. 그 불빛에 낙엽잎과 소나무 솔잎을 모아 태우면 줄어드는 담배처럼 빠르고 쉽게 타올랐고 고구마와 옥수수를 던져놓고 불쏘시개로 짖궂게 굴려댔다.



시간의 힘에 의해 초가집은 점점 기울어져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산에서 내려와 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유년기 함께 뛰어놀던 또래 친척과 나는 숨막히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각자의 핸드폰만 바라봤고 어른들은 그 광경에 서로 말이라도 해보라며 부추기지만 그 말에 되려 더 어색해졌다. 가만히 티비를 보고 핸드폰을 보고 끊임없이 차려지는 음식을 먹느니 산에 고사리나 따러 가자며 요상한 꽃무늬 바지를 던져받았다. 산 속의 낣은 집은 농사를 짓다 쉬는 임시 휴식처가 되었다. 2017년 5월 6일도 대충 그런 날이었다.


그 달 수요일에는 석가탄신일, 금요일은 어린이날이어서 하루 휴가를 내면 꼬박 5일의 빨간날이 생겼고 타지역의 친척집과 외가집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날도 와이파이가 없는 외가집에서 친척 동생을 놀아주다가 진이 빠져 늘어져 있는 나에게 엄마는 꽃무늬 바지를 던졌다. "위에 점리가서 고사리나 따오자." 어느덧 멀미의 울렁임 따위, 출근의 고됨으로 이겨버리는 어른이 되었다. 덜컹거리는 산속 비포장 도로도 어렴풋 정리가 되어서 이제 수월하게 도착했지만 나의 발걸음으로 더덕밭과 고사리밭을 오가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건물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만 하면 길을 찾지 못하는 엄마가 여기에서는 근두운을 탄 손오공처럼 돌아다니며 이 풀과 저 풀을 구분하고 이 나무와 저 나무를 찾아낸다.


고사리를 한소쿠리 꺾어내고 돌아오다가 할미꽃을 발견했다. 나는 계절을 대표하는 꽃이 아닌이상 아무것도 몰라서 그 무엇도 아닌 그저 '꽃'인데 할미꽃은 생김새부터 너무나 할미꽃이다. 언제 그렇게 챙긴건지 이모와 이모부들은 문살을 다 열어재치고 앉아 큰 방에서 삼겹살을 꺼내 굽고 있었다. '어릴때는 큰 방 안에 앉아있으면 소 두 마리가 보였는데 이제 텅빈 외양간이랑 갈라진 툇마루만 남았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맑은 하늘을 보며 고기쌈을 입에 넣었다. 상을 치우고 하늘을 보니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으로 출발했을 때 건너편 산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연기가 여기에서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아까부터 핸드폰을 빌려달라는 친적 조카와 함께 돌맹이로 공기놀이를 시도했다가 이게 재밌냐는 말의 비수를 맞고 넷플릭스로 빨간 머리 앤을 함께 봤다.


산에서 내려와 집을 챙기고 5시간의 도로를 뚫고 부산에 도착했다. 저녁 뉴스에서 강원도 삼척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 하였고 뒤이어 경상북도 상주와 강릉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2017년 5월 7일, 산골짜기 어딘가에 다 낡아빠진 초가집이 타올라 없어지고 새카만 냉장고가 덩그러니 남았다. 불은 낙옆도 소나무 솔잎도 고구마도 옥수수도 외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집도 불태우고 기억만 남긴채 사라졌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속이 빈 회향나무 안에 작고 희미한 불씨를 숨겨 인간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그것은 최초의 선물이었을까 재앙이었을까. 어쩌면 인류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자연의 힘 속에서 으스러지지 않는 것은 없으므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이곳에서 추억을 붙잡지 말고 그저 기억하라는 발화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2017년 5월 6일 발생한 강원도 삼척의 산불은 거의 3일간 불탔으며 강릉시와 동시 발생해 1,017ha의 산림이 불타없어졌다. 2명이 숨지고 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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