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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 Oct 19. 2020

대학원을 그만두게 된 이유

날짜는 따져봐야겠지만 대학원 연구실에서 짐을 챙겨 나온 지 7~8개월이 지났다. 박사 과정도 아니고 석사 과정을 하다가 그만두게 된 것이다. 내 학적은 '석사 수료'로 남았을 것이다. 금방 그만둔 것도 아니고 질질 끌다가 논문을 제출해야 할 시기에 그만두고 말았다. 보통은 4학기를 다니고 석사 과정을 마친다. 하지만 나는 실험이 덜 되었다는 이유로 5학기째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2년 넘는 시간을 대학원에 있었고, 학비도 적지 않게 냈거늘.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학을 졸업했을 때 뭘 해야 할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취업은 하고 싶지 않다는 무른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학부 때 배운 지식이 너무 얕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학력만 믿었는지 특별히 취업을 위해 쌓은 스펙이나 경력도 없었다. 매우 안일하게 살았던 것이다. 나는 돈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슴속에는 이상적인 생각들만 가득했다. '인류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하겠다. 나는 환경에 관심이 많으니까 관련 분야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뭔가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당시에 내 진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질 않았다. 솔직히 나는 그냥 놀고 싶었다. 그때는 한창 게임도 많이 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계속 집에서 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대학원에 지원을 했다.


OO대. 이름만 들어도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쳐주는 대학이다. OO대 대학원을 선택한다면 잘 못된 선택 일리가 없었다. OO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가 가장 관심이 가는 과, 분야, 연구실을 탐색했다. 이 정도면 꽤 합리적인 과정인 듯 보이지만, 나는 딱 여기까지만 조사하고 무작정 인터넷으로 지원서를 냈다. 보통 학우들이 대학원을 지원할 때는 미리 연구실에 찾아가서 교수님을 뵙고 연구활동도 진행해본 다음 연구실을 결정하는데 나는 그 과정 조차 무시해버린 것이다. 왜 그랬냐고 나를 비난한다 해도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일인 걸.


심지어 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러서 한 학기를 더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바람에 내가 처음 지원했던 대학원에는 합격을 했다가 취소가 되었었다. 그리고 대학을 한 학기를 더 다니고 다시 같은 과 대학원에 지원을 했던 것이다. 한 학기 정도면 내 진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볼 시간이 어쩌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무려 두 번이나 문을 두드려서 들어간 대학원인 것이다. 나의 선택은 분명 옳은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연구 주제를 선택하고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 연구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주제 중에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연구실을 잘 못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됐다. 내가 미리 컨택하지도 않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선택한 연구실이지만 그것이 틀려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갈 곳을 잃게 되고 시간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내게 적합한 연구 주제를 골라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연구의 방향을 잡아갔다.


조금은 의심쩍은 마음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갔고, 연구실 사람들과도 친밀해졌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 길이 아니야'라는 속삭임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도 크다. 실험을 진행하고, 학회에도 다녀오고, 출장도 다녀왔다. 그런데도 나는 '내 일'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 마음속 의심은 점점 커졌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확신이 되어가면, 나도 모르게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연구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고, 연구에도 열정을 쏟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떠날 수 없었다. 'OO대학교 석사학위'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 떠난 마음으로 어떻게든 일과를 보내려고 하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연구 성과를 발표해야 하는 월요일 전날인 일요일에는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 내가 정말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제는 한계가 왔다는 걸 알았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졸업 논문을 완성할 수가 있을까. 나는 딜레마에 빠졌고, 연구실에 출근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수님과 연구실 형들을 뵐 면목도 없었다. 나는 이제 결정해야만 했다. 부모님께도 대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그럼에도 완전히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나의 마무리는 아주 지저분했다. 나는 결국 매우 늦은 타이밍에 대학원을 다시 계속 다니기로 생각을 하고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이제 인내에 한계가 오신 모양이셨다. 그만 다니는 것이 낫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다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 자신에 대한 분노에 나는 연구실 책상을 바로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교수님께, 연구실 사람들께 죄송한 마음이 가슴에 쓰라린 빚으로 남았다. 다시 찾아뵈어 인사를 드릴 용기도 생기질 않는다. 나는 실패한 사람으로서 찾아가고 싶지가 않다.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고 찾아뵙고 싶다. 대학원을 그만둔 이후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더 노력해야 한다. 필요한 것을 배우면서 인생에 대해 다시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너무 급하지 않게 하지만 늦지 않게 나의 믿음을 실현해내고 싶다. 대학원에서 딸 수 있는 학위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 앞으로의 나의 삶을 충분히 성공으로 일궈낼 수 있다는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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