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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군 Nov 11. 2024

아플 수 있는 자격

아동기 채무와 변제의 서사에 관하여

바야흐로 심리학의 시대라서,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 이제 우리는 세상에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승인하게 되었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환각을 보고, 집중하지 못하는 개인적 고통은 물론 부적절하게 돌아다니며 수천만원을 쇼핑에 쏟아붓고 도박과 술로 삶을 탕진하고 화가 나면 앞뒤 없이 때려부수는 행동까지 모두 '나쁜 것'에서 '아픈 것'으로 재개념되었다. 심리학자로서 이러한 변화는 값지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자기 두개골 안의 신경세포 신호전달 오류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납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심리학자는 아니다. 심리적 어려움의 이해는 너무 복잡하며, 여전히 우리는 나쁘다와 아프다를 가려야 한다. 마침 아동학대와 애착문제에 대해 방송을 통해 널리 퍼지며 새로운 서사가 대두되었다. 어린시절 받았던 부당한 고통이 한 인간을 망가뜨리고, 정신과와 상담센터에 가게 한다는 것이다. 심리치료 토크쇼와 힐링 서적들은 당신의 부적응이 유년기의 상처에서 비롯되었으니,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틀을 만드는 중요한 시기에 허락없이 끼어든 부조리들은 가차없이 아이의 마음에 불신과 자학의 씨를 심는다는 것. 이제 이는 누구나 아는 진실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지금 어떤 이가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어린 시절 이러한 결핍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철저하게 자격의 문제이다. 이는 채무와 변제의 서사이다. 어릴 때 세상은 그 사람에게 빚을 졌고 어른이 된 그에게 갚을 의무가 있다. 우울하고 불안해서 못살겠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변제 요청이다. 더 고생할 수록 많이 아픈 것이 당연하며 그가 회상하는 고약한 경험에 모두는 진지하게 집중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왔다면 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무난히 자라왔음에도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부당한 댓가를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슬프고 찬란한 자기 이야기가 없는 누군가가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말한다면 그는 염치가 없는 것이다. 발달 과정에 그가 빼앗겼던 것들만이 인생사의 채권으로 남으므로 상처흔적 없는 신음은 엄살일 뿐이다. 좀 더 나아가 나약함의 발로이고, 부당이익의 선취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의 어린시절을 묻는다면 이는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의 표현임과 동시에 어떤 자격요건의 확인이기도 하다.


심리학자가 아닌 사람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론의 단순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종착역이 바로 채무와 변제의 서사이다. 경청이나 이해가 한정적이고 귀한 자원이라고 생각할수록 우리는 어두운 서사를 가진 채권자들에게만 들어줄 가치를 찾는다. 특히 가장 용납받지 못하는 사람은 과잉보호의 인생사를 지닌 사람이다. 본인이 선택했건 그렇지 않았건 신나게 누린 이들은 가장 먼저 말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는 오히려 채무자이며 건강하게 살아갈 의무가 있다. 특히 상처 없는 사람이 나쁜 방향으로 아플 때, 그러니까 폭력적이거나 충동적이거나 자주 화를 내는 쪽으로 독특하면 그는 특별히 더 욕먹어야 할 사람으로 취급된다.


이 서사가 얼마나 강렬한지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의 어린시절일수록 더 밝은 쪽으로 재해석한다. 아마 저이의 부모님은 오냐오냐 키웠으리라고, 받을만큼 받아서 더 버르장머리 없어졌을 거라고, 복에 겨워 자기 주제를 모를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욕하는 대상의 채무를 높게 간주하여 그 녀석이 자신이 받은 은총을 갚기는 커녕 배은망덕하게 군다고 여기고 더 편하게 싫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정당화하여 편하게 빚어낸 분노 안에 어색함 없이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 행동의 원리는 채무와 변제의 서사로 가볍게 퉁칠 수 없다. 기질, 환경, 양육이 상호작용하며 사람은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성장한다. 느낌의 크기와 방향은 너무나도 개별적이다. 유전자도 성장배경도 모두 불공정하게 나뉘는 달란트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이 비합리적 인과율을 이해하고 아픔의 생성원리를 파악하여 행복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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