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13
엄마가 우리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뭘 참았는데.
화나면 소리 지르며 동네방네 떠나가라 울부짖고, 허구 헌날 '너희 먹이고 입히고 키워준' 타령하며 공치사
하고. 그것뿐이야? 우리가 알 필요도 없는 남의 가정사
죄다 끌어와서 늘어놓고. 도대체 우리가 왜 남의 이혼사
에 잠자리 문제까지 들어야 하는 건데 왜?!
툭하면 나쁜년들아 욕하고 너희들같이 못된것들 필
요없다고 하고. 또 뭐라고 했더라. 나가 죽어버리라고
도 했지. 꼴보기 싫으니까 죽으라고....
난 막장 드라마 우습더라. 어느 집안 콩가루 집안이라
고 한 번씩 뒷담화하지? 엄마, 우리 집은 그럼 뭐야.
저번엔가는 유산이 어느 정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받으려면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지? 유산 때문에 효도
하는 자식들 봤겠지. 난 엄마 돈 십원 한 푼도 탐낸 적 없
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추호도 없어.
우리더러 출가외인이라며... 출가외인인 딸들한테 왜
바라는 건 많은 건데? 때 되면 명절이고 생일이고 우리가 형편만큼 챙겨드리는데도 불만이지. 우리는 늘 부모한테 걱정 끼치지 말고 여유롭게 잘 살아줬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언젠가 딸들이 문제 일으켜서 숟가락 얻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거 모를 줄 알아?
엄마랑 아빠 부부싸움할 때마다 우리가 느낀 공포심과
무력감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모르지? 엄마는 아마 내가 죽어도 모를 거야.
내가 죽어버려도 '그렇게 약해 빠져 가지고 가버려서 자식 앞세운 엄마 만든 불효자식 나쁜 년' 이라며 두고두고 날 원망하고 물어뜯을 사람이야.
엄마는 내 죽음이 슬픈 것보다 '자살한 딸의 부모'라는 시선으로 볼 사람들의 눈이 싫겠지.
언제나 내게, 여동생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부끄
럽다, 체면이 깎인다' 그놈에 체면이 자식들의 안위나
행복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엄마랑 아빠니까.
기대를 버린 지 오래지만 기회는 남아있어. 제발 이제
우리한테 상처 그만 줘.
내가 엄마랑 아빠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 제발 부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