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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04. 2023

말로만 듣던 이탈리아의 차털이를 당했다.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한 날

볼차노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눈만 뜨면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맡고 날씨를 확인한다. 오늘 날씨 역시 화창하다. 오늘은 피렌체로 장거리 이동을 하는 날. 구글 네비에는 약 4시간의 여정이라고 나와 우리는 아침 일찍 볼차노에서 출발해 중간에 시르미오네에 잠깐 들러, 온천수에 살짝 발이라도 담가보고 점심을 가볍게 먹은 뒤 피렌체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볼차노에서 묵었던 아파트는 다 좋았는데 세탁기가 없었다. 또 마침 볼차노에서 머무르는 동안은 주말에 닿아 코인 세탁실도 다 휴일이었다. 낭만의 도시 피렌체에 가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시원하게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라니. 코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탁물과 아직 입지 않은 옷을 구별해 짐을 꾸렸다. 출발할 때 캐리어 하나는 먹을 음식만을 담아왔는데 차츰 줄어 짐을 챙기기가 수월해졌다. 우리의 여행이 절반쯤 지나간 것을 비어 가는 캐리어가 말해 주고 있었다.


짐을 다 싸고, 남편과 아침을 준비해 아이들을 깨웠다. 오늘은 멀리 떠나야 하는 날이니 일정을 아는 아이들도 일찍 눈을 떠준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며칠 새 정이 듬뿍 든 아파트와 작별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우리는 아파트와 계약된 공영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두었었다. 우리 호실이 표시되어 있는 자리에 늘 주차하니, 사실 주차비는 약간 비쌌지만 저녁에 들어와도 주차 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고 아파트와도 가까워 3일간 잘 이용했었다. 떠나려니 이제 이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올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서운했다.


캐리어 두 개를 트렁크에 넣고 트렁크 문을 힘차게 내리 닫는 순간!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트렁크 문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들려 나만 들은 것 같기도 했는데, 조수석에 타려고 보니 글쎄 앞자리 유리창이 와장창 깨진 것이 아닌가.

“오빠, 우리 트렁크 문 너무 세게 닫았나 봐. 앞 유리가 깨졌어…”

나는 정말 우리가 트렁크 문을 너무 세게 닫아서 유리가 깨진 줄만 알았다.  


남편은 그럴 리가 없다며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다시 보니 앞 유리창이 깨진 차는 우리 차뿐이 아니었다. 몇 대의 차의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남편이 밤새 차털이범들이 왔다 갔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집을 빌려준 호스트에게 연락했고 삼십 분 정도 후에 오겠다며 정말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렌터카 회사에 연락해야 할 것 같아 바우처에 있는 메일로 우리의 차 사진을 보냈다. 메일은 바로 답장이 왔는데 네가 차를 빌린 지점으로 전화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이런 무책임한 서비스 같으니라고… 당황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 주차장을 이용하는 마을 할머니가 멀리서 다가와 위로를 보낸다.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이런 일이 있다고. 새벽에 개가 짖는 소리를 들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우리 마을에 놀러 와서 이런 일을 당해 미안하다고. 우리를 위해 영어로 천천히 말해주는 할머니의 위로를 받으니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은 외국에서 차를 빌려 여행할 경우에 보통 글로벌 브랜드의 렌터카를 이용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유럽 내의 렌터카 가격이 너무너무 비싸 후기는 별로 없지만 가격은 저렴한 로컬 브랜드 렌터카를 빌렸다. 후기도 많지 않아 약간 모험이었지만 차는 우리가 예약한 차보다 두 등급 정도 업그레이드 해서 빌려주었고 막상 차를 타보니 거의 새 차에 가까워 지금까지는 굉장히 만족했었다. 그러나 이런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니 도움을 받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물론 우리는 풀커버리지 보험을 가입했기에 비용과 상관없이 빨리 처리만 되길 바랐는데 이탈리아에서 빨리라니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호스트를 기다리며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나와 아이들을 본 남편이 말한다.

“우리 어제 돌아다니면서 여기 스위스 같다. 여기 독일 같다 이랬잖아. 근데 말이야. 여기 이탈리아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남편의 노력이 고마웠다. 사실 떠나오기 전부터 이탈리아의 치안에 대해서 유독 걱정 어린 말을 많이 들은 터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이탈리아 인들은 어찌나 친절하고 다정했나. 그런데 차털이범을 만나게 되다니.


막막한 우리 가족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호스트가 왔다. 그는 이곳저곳에 전화해 보고 유리창을 해결해 주려 노력했다. 우리 렌터카 회사에도 그가 전화해 주었는데 이탈리아말로 통화하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전화기에 대고 몹시 화를 내는 그를 보면 우리의 렌터카 회사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결국 그가 주변의 자동차 유리가게에 가서 앞 유리를 깨끗하게 치우고 플라스틱으로 고정해 출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유리로 교체해도 어차피 비용이 들지 않아 우리는 상관없었지만 그러려면 이틀 후나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피렌체에 빨리 가고 싶었으므로 호스트의 도움을 받아 앞 유리를 깨끗하게 치우고 플라스틱 가짜 유리를 붙였다. 공영 주차장이라 그곳에서도 보험이 들어 있었는지 호스트는 비용은 자기가 처리했으니 어서 늦지 않게 피렌체로 조심히 가라고 해주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시르미오네는 들릴 수 없을 것 같고 서둘러 가지 않으면 피렌체에 저녁이 되어야 도착할 것 같았다.


호스트와 인사를 나누고 볼차노를 떠났다. 플라스틱 유리를 붙인 차 안에서 볼차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실 차털이범을 만난 것은 몹시도 운이 없는 일이었지만, 다행인 것은 차 안에 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잃어버린 것은 없었다. 또 호스트가 책임감 있게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었다. 자동차 유리 가게에서도, 내가 너희들 피렌체에 비행기 타러 가야 한다고 말해뒀다. 비행기 늦으면 안 돼서 제일 먼저 고쳐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 고칠 때까지 내가 끝까지 같이 있어주겠다고 말하는 믿음직한 호스트가 있었다. 또 아까 주차장에서 할머니의 위로도 받지 않았나.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따뜻한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4시간 정도 걸린다던 피렌체는 거의 6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기도 했지만, 이탈리아도 휴가철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북쪽으로 올라올 텐데 이제 우리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또 어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 가족은 결국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마음이 피어났다.


@표지사진은 볼차노 주차장에서 만난 피해 차량. 우리 차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피렌체에서 젤라또로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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