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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Feb 03. 2024

일상을 말랑말랑하게 빛내주는 쓰기의 힘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나날을 기록으로 특별하게


책 쓰기 연수를 다녀왔다. 책 쓰기는 대구교육청에서 시작한 교육 사업으로 학생들이 저자가 되어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에 대한 연수였다. 연수에 참여해서 책을 편집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공부도 했고 표지를 만드는 법도 배웠다. 또 한 학기 안에 이 프로젝트를 하려면 어떻게 일정을 짜야하는지 구체적인 계획안도 들었다. 관심 있던 주제였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난관이 있었으니 모두가 ‘내 일의 내일’이라는 주제로 한 편씩 글을 써야 하는 것이었다. 소속과 연령이 다양했던 우리는 쓸 말이 없다며  적잖이 당황해했다. (물론 마지막에는 다들 멋진 글을 한 편씩 완성했지만. 역시 선생님들!) 나는 간헐적으로 글을 쓰고 있었지만 연수를 듣는 내내 너무 머리를 써서인지 한 줄 쓰는 것도 버거웠다.

연수는 교사를 살찌운다. 연수 특강으로 김민철 작가가 강연이 있었다.강연 후에 감격해서 남긴 내 스토리를 자신의 계정에 올려준 김민철 작가님. 성덕은 이런 걸까요.



사실 나는 글쓰기라면 자신 있어야 할 국어교사지만 나 역시 글쓰기가 쉽지 않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지,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도 되는 건지, 맞춤법이나 문법적 비문도 눈에 거슬리지만 무엇보다도 다 쓰고 나면 이런 글을 누가 읽나, 의미가 있나 하는 마음에 글쓰기가 더 망설여진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내가 아이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주었을 때 무슨 내용으로 써야 하냐며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애들의 마음을 사실 내가 가장 잘 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제가 있어야 하고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기엔 내 일상의 글감 소재가 너무 빈약하기만 하다는 느낌이다. 일상의 힘듦을 글로 담아내면 너무 징징대는 것 같은 마음에 이런 글은 일기장에나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기쁘고 행복한 일을 쓰다 보면 자랑하는 느낌이 들어 이내 감추게 된다.


그러나 두 시간 내에 글을 한 편 써야 했다. 내 일을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글쓰기 모임이 떠올랐다.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한 줄 쓰기를 힘들어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를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는 그녀들 말이다. 사실 처음엔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먼저 모임을 결성한 나였다. 그러나 모임만 결성했지 도통 시작할 생각을 않는 것도 나였다. 그러던 중 우리 중 글을 가장 많이 써본 맏언니의 격려와 이끎으로 한 편 한 편 글을 써 나가게 된 우리다. 한 발 내 딛기 어려웠던 우리들을 쓰기의 세계로 이끌어 주어 내 삶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평소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로 쓸 생각은 못했다. 우리 글쓰기 모임에 대해 한 줄 한 줄 써 나가다 보니 내 일이 내일로 나아가는 길이 보인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쓰지 않으면 나의 글쓰기 모임에 대한 고마움은 기록되지 않았다. 나는 쓰기 위해 생각하고 나의 삶을 떠올리며 고마움도 아쉬움도 즐거움도 슬픔도 하나씩 하나씩 더 기억하고 남길 수 있었다. 처음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 한참을 말로 일상의 근황을 전했는데, 글은 어떤 걸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글감을 고민하던 나에게 지금 말한 모든 것이 다 글감이 될 수 있다던 맏언니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엊그제는 아이들이 둘 다 성당에서 체험활동을 떠났다. 그리고 모처럼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전부터 대구미술관이 전시에 진심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남편이 오늘 같은 날이 대구 가기 좋은 날이라기에 함께 대구미술관에 갔다. 마침 램브란트의 판화전시가 있었다. 다양한 판화 작품을 들여다보다 ‘팬케이크를 굽는 여자’라는 작품을 한참 보게 되었다. 네덜란드 서민들은 집 밖에서 팬케이크를 굽는 일은 매우 일상적이었다는데 램브란트가 그런 일상을 관찰하고 포착하여 판화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겠지만 관찰하고 들여다본 사람에게는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글쓰기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이었다.

일상을 포착해 예술로 승화시킨 램브란트, 전시는 물론,전시 후 마시는 커피마저 완벽했다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라도, 내가 들여다보고 포착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소중한 기록이 되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내 삶의 예술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망설임을 내려놓고 쓰고 싶어졌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일상을 쓰고 나누며 내 삶의 궤적을 넓혀가며 말랑말랑하게 나아가고 싶다.



<@표지 사진은 여행 후 모으는 마그네틱들. 여행 후에 모으는 마그네틱들처럼 내 삶의 기록들을 모으고 싶다.>

<@제목의 ‘말랑말랑하다’는 표현은 한민복 시인의 ‘뻘’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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