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고 바라는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 동생을 잘 챙기는 언니였다.(동생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 밖에 나가서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내 모습에 사람들은 겨우 한 살 차이냐며 되묻곤 했었다. 또 가족 모임에서는 사촌 동생들을 잘 돌봤다. 그런 나였기에 아이들을 잘 돌본다. 의젓하다 등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런 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까지 했으니. 나의 장래 희망은 언제나 지지를 받았고 그런 지지덕에 별다른 탐색 없이 내 진로희망은 확고해졌다.
사실 되고 싶었던 교사는 ‘초등 교사’였으나, 수능 시험을 망쳐 교대가 아닌 사대에 진학했고 대학의 전공에 맞춰 현재는 ‘국어교사’의 삶을 살고 있다. 국어 교사로 살아가는 삶은 대체적으로 단단하게 안정적인 삶이다. 오랜 시간 지지와 응원을 받고 만든 나의 장래 희망은 나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현재로 빚어졌다. 삶에서 종종 권태와 회의가 나를 찾아오지만 나의 열심한 노력으로 빚어 올린 이 단단한 안정은 나를 편안하게도 해주었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일탈을 생각했다.
사실 안정되고 편안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 쉴 틈도 없는 나날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부터 다시 잠드는 시간까지 바쁨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먹은 아침을 채 치우지도 못하고 출근해 하루종일 바쁘게 학교 생활을 하다 퇴근하면 오늘 하루 내내 식탁 위에 놓인 빈그릇들이 나를 본다.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으며 집에서의 일과도 다시 시작되는 나날이다. 저녁이 되어 침대에서 책을 읽는 몇 분을 제외하고는 (그것도 이내 잠이 들기 일쑤다.) 내내 동동거리며 살아가는 내게 나를 위한 시간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살아간다고, 그나마 안정된 직장과 평온한 가정이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쑥불쑥 허무와 회의가 올라왔다.
그럴 때 내가 즐겨하는 일은 새로운 또는 다녀온 여행지를 찾아보는 것. 그리고 관련된 여행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것이다. 요즘은 원하는 지역의 에어비앤비를 훑어보기까지 한다. 일탈이라기엔 너무 모범생 같지만 잠깐의 모범적인 일탈을 나를 다시 살며시 삶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무튼 그럴 때 많이 찾아보는 곳은 주로 ‘파리’인데 최근 들어 파리에 대한 안 좋은 평과 뉴스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한 ‘파리’ 사랑은 언젠가는 ‘파리’에서 좀 길게 , 여행하는 게 아니라 좀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검색을 마무리하게 된다.
문득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스무 살이면 다 큰 거죠?) 50대가 되면 내가 하는 이 일도 20여 년이 훌쩍 넘게 된다. 그러면 파리로 훌쩍 떠나 여행, 아니 살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 있겠어? 라며 작아지는 마음, 그렇게 산다고 인생이 달라지겠어?라는 의문들이 맴돈다. 그래서 로망인가. 파리에 대한 로망은 실현 가능성 제로를 향해가지만, 일상에 지친 나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작은 안식처였다. 그냥 나에겐 오랜 시간 파리에서 사는 삶은 로망이었다.
그런데 뭔가.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있다. 김민철 작가는 20여 년간 하던 일을 쿨하게! 그만두고 그야말로 파리로 훌쩍 떠난다. 두 달여간 여행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꿈꾸던 시간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과거의 꿈 위에 살포시 지금의 내가 앉는다. 이 만남을 나는 운명이라 믿기로 한다. <@무정형의 삶>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로망을 미리 알고 실천한 것처럼 김민철 작가는 떠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로망의 미리 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나 반듯한 상자 안에서 정리된 삶을 꿈꿨고 살았다. 조금씩 조금씩 상자가 비좁다는 것을. 조금 더 나아가보고 싶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용기가 안 났다. 꼭 파리일 필요는 사실 없었다. 어디에서라도 괜찮았다. 정형된 삶에서 무정형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살고 싶은 속도대로 살아도 되는 여행이라면 내가 살고 싶은 속도는 어떤 걸까. 그 속도를 열심히 찾아보자,라고 쓰려다가 멈춘다. 찾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래도 되는 시간이다. 그래도 되는 시간을 내가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보란 듯이 사치스럽게 쓰렴. 지금은 무지개의 시간이야. <@무정형의 삶>
오랜 시간 규칙적인 삶을 살았던 김민철 작가 역시 이내 허무와 회의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만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아간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결국 내가 밟아서 만들어 가야 하는 길. 나의 로망을 한 발 앞서 실천한 실천기였지만 나의 길은 또 다를 것이다. 내가 만들어 갈 나의 무정형의 삶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는 길을 내디뎌 본 그런 모험과 도전이 내 삶에서는 별로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처음엔 부러웠고, 나중엔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더 나아가 나의 정형된 상자에서 나와 무정형의 나를 찾아보고 싶다. 공들여 쌓은 나의 탑들이 괜찮을까?라는 내 안의 겁쟁이가 묻는데, 이 책은 괜찮다고 용기를 내보라고 해준다.
안정적인 돈 대신 넘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삶을 지키는 대신 무정형의 시간을 모험하고 싶다. <@무정형의 삶>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무정형의 나를 찾고 싶어 진다. 그 나를 찾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야금야금 모아야겠다.(작가도 프랑스어를 무려 5년이나 꾸준히 했다.) 내가 차곡히 쌓아둔 나만의 도구들을 들고 나의 삶을 모험해 보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