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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Jul 22. 2022

엄마가 글을 쓰면 일어나는 일들

    

엄마라는 직업은 멀티플레이어다. 나는 엄마, 아내, 학생, 딸, 며느리의 역할을 하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졌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나만의 공간, 시간, 꿈이 필요한 존재다.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 시간, 꿈을 가져야 엄마라는 역할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다.  몽테뉴처럼 나만의 치타델레를 찾아야 한다. 독일어로 '요새 안의 작은 보루'를 뜻하는 치타델레는 성찰과 계발의 공간이다. 나의 치타델레는 거실 테이블이다. 집안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일상의 나태함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필사를 하고 책을 읽는다. 읽고 쓰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쌓이면서 내 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힘이 생겼다.


 어느 날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글 쓰기로 했어. 지난번에 말했던 공저 기획에 참여해볼까 해.”

“그래, 그만큼 읽었으면 이제 쓸 때도 됐지!”          


그 후, 설거지를 하다 머릿속에 글감이 떠오르면 고무장갑을 벗어 던진다. 마치 급한 약속이라도 생각난 사람처럼. 잠그지 못한 물이 설거지통에서 넘치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핸드폰을 찾는다. 제어할 수 없는 중독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기록한다. 아이들이 옆에서 말을 건다. 엄마는 잠시 다른 세상 속에 가 있느라 반응이 늦어진다.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건조기에서 뜨거운 빨래들이 쏟아져 나온다. 빨래 바구니에 일단 담는다. 다음날 또 쌓이고 쌓여서 빨래는 산을 이룬다. 공든 산이 무너지려고 할 무렵 인심 쓰듯 개어준다. 본디 집안일이란 게 매일 해도 표가 안 나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금방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기진맥진해져서 잠시 쉰다는 것이 어느새 졸았나 보다. 남편의 지청구가 날아든다.           

“자는 거야? 자려면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든가.”

“아니, 안 자. 티브이 보고 있었어.”          


분명 졸아 놓고는 안 잔 척 우기고 본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아빠의 단골 멘트를 한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 꾸역꾸역 버텨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내 잠과의 싸움에서 백기를 들고 항복한다. 새벽에 일어나 꿈을 마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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